하루 12시간씩, 6개월간 안무 연습
배우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든 완벽한 탭댄스
앙상블 배우로 출발해 안무감독으로…
“공연이 올라가는 지금도 안무 생각뿐”
스윙 리듬을 실은 발 끝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탭 소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여주인공 오소연(페기 소여 역)은 1초에 무려 15번 탭 소리를 낸다. “탭댄스를 처음 할 땐 소리 하나라도 빠지지 않으려고 요령 없이 세게 때렸더니 발바닥이 퉁퉁 붓기도 했어요.”(오소연) 비단 여주인공 만의 후일담이 아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무대 위 스물일곱 명의 앙상블. 어디에도 ‘구멍’은 없다. 경쾌한 움직임, 완벽한 발소리엔 배우들의 ‘피, 땀, 눈물’이 스몄다. 이들을 진두지휘한 건 권오환(40) 안무감독(대한민국탭댄스협회장·스탭스컴퍼니 대표)이다. 한창 공연을 진행 중인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권 감독을 만났다.
“한 작품이 관객을 감동시키는 요소는 다양해요. 그 중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오롯이 배우의 땀으로 만든 감동이에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에 12시간씩 마스크를 착용한 채 안무 연습이 이어졌다. 탭댄스를 처음 배우는 ‘초짜’부터 실력이 출중한 ‘베테랑’까지 모든 배우들의 ‘상향 평준화’를 위한 사전 연습기간은 6개월에 달했다. 올해에는 코로나19로 단체 연습을 할 수 없어 30~40명의 배우들과 개별적으로 연습을 진행했다.
“배우들에게 항상 이야기해요. 오프닝에서 그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면 막을 내릴 때까지 힘을 받을 수 없다고요. 안무는 틀려도 괜찮아요. 실수해도 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춤을 추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무대에 서는 그 순간은 앙상블도 주연도 모두가 배우예요. 배우의 마인드로 어떤 한 순간도 흘려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해요.” 땀과 노력의 결실은 무대가 맺었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22개의 안무 중 절반에 해당하는 탭댄스. 공연 1회당 3000번 이상의 탭 소리에 관객들의 심장 박동은 숨 가쁘게 오르내린다.
권 감독과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당시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앙상블 배우로 참여하며 첫 연을 맺었다. 당시 지금의 제작사인 샘컴퍼니의 김미혜 대표가 페기 소여를, 남편인 배우 황정민이 빌리 로러 역을 맡았다. 이미 2000년부터 탭댄스의 매력에 빠졌던 권 감독은 작품 내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모든 넘버의 센터에 서게 됐어요. 당시 안무감독을 맡았던 레지나 알그렌은 연습 이후 김미혜 대표님과 황정민 형의 트레이닝을 맡기기도 했고요.”
독보적인 실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권 감독은 2016년 ‘브로드웨이42번가’의 협력안무로 합류했고, 2017년부터 작품의 안무 곳곳을 손보며 지금의 틀을 만들었다. 권 감독이 바라보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볼거리로 완전무장한 화려한 쇼뮤지컬만이 아니다.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가진 의미가 굉장히 많아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많은 캐릭터의 서사를 담았어요.”
권 감독은 극 중 등장하는 ‘머니’는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탭을 했고”, “‘거울신은 보기 좋은 쇼가 아니라 당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돈, 술, 마약에 찌든 사회를 풍자하고 비꼰 것”이라고 설명했다. 2막에서 가장 긴 연속군무를 선보이는 ‘발렛 투’ 신에선 “도시 중의 도시는 뉴욕, 행운의 거리”라는 가사에 맞춰 시골 처녀들이 팔을 뻗으며 뉴욕을 찬양하는 춤 동작을 선보인다. 무엇 하나도 의미 없이 짜여진 안무는 없다.
24년간 지속한 뮤지컬의 고전인 데다, 90년 전 과거에 맞춰진 배경을 가진 만큼 이 작품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2018년 공연예술계에 불어온 미투는 작품에서 외설적이고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뉘앙스가 담긴 연기나 노래 가사를 수정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가사 한 줄을 고치는 데에 일주일이 넘게 걸릴 만큼 굉장히 많은 의견들이 오갔어요.” 시대적 배경이 주제로 드러난 작품이다 보니,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가진 기본적인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가사가 달라지면 뜻을 내포한 안무도 바뀔 수밖에 없어요. ‘42번가’가 가진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많이 바꿨어요.”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알면 알수록 깊은 작품이에요. 한 번에 완벽하게 고칠 수는 없고, 계속된 수정으로 완벽에 가까워지도록 하고 있어요.”
배우로 시작한 첫 걸음은 탭댄서라는 새 길을 개척했다. 스물한 살에 시작해 어느덧 20년. 그의 발끝에는 대한민국 탭댄서의 이정표가 세워지고 있다. “10년만 해보자며 시작했는데 그 10년 동안 너무나 사랑하게 됐어요.” 전문가가 말하는 탭댄스는 단지 춤이 아니다. “탭은 춤이라기 보다 언어예요. 추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는 것이고요. 탭댄스는 이 세상의 어떤 음악과도 연주할 수 있어요.”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벗어나면 그의 이름 옆엔 ‘탭댄스 선구자’라는 수사가 붙는다. 20년을 맞은 올해에는 보다 다양한 개인 공연도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은 다시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몰두한다. “무대 아래에서 발이 가만 있지 않을 때도 있어요. 공연이 올라가는 요즘도 계속 안무만 생각해요. 작품의 의미를 보다 잘 담을 수 있는 안무요.”
고승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