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지난 12일 16회를 끝으로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 제작진이 자성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다. PPL 등에서 안이하게 생각한 것 같다는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행이다.

판타지 멜로물인 ‘더 킹’은 김은숙 작가에게 많은 시사점과 도전과제를 던졌다. ‘더 킹’이 시청률이 높고낮음보다는 시대에 맞는 감수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완성도도 낮았다는 점은 김 작가에게는 뼈아픈 지적으로 와닿았을 것이다.

‘평행세계’라는 건 처음에는 신선했고 호기심도 생겼다. 하지만 이 낯선 개념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해 오히려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기도 됐다. 몇몇 말도 안되는 떡밥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싶지도 않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렇게 전개하려면 굳이 평행세계라는 개념의 설정이 필요했냐는 말도 들린다.

멜로도 김은숙 작가의 클리셰가 자주 느껴질 정도로 구태의연했다. 실제로 백마(막시무스) 탄 왕자(이곤 황제)가 생활전선에서 고군분투 하는 전형적인 캔디(정태을 형사)를 만나 무한한 사랑을 나눈다는 판타지 멜로였다.

멜로 자체가 진부한 건 아니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화되고 변주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평행세계라는 설정만 걷어내면 멜로는 지금까지 김은숙 작가가 수없이 보여주었던 그대로였다. 남녀주인공은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데, 시청자들이 그런 정도까지 가기 어려웠다.

시대적 감성을 고민하지 않고 독서와 사색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베테랑 작가도 신인작가보다 더 허술한 작품을 쓸 수밖에 없음은 이번 드라마가 잘 보여주었다.

PPL(간접광고)은 큰 숙제로 남았다. PPL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다른 드라마들도 다 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PPL을 했다. 장겨울(신현빈)과 채송화(전미도)가 샌드위치 등을 엄청 먹는다는 설정은 왜 했겠는가? 캐릭터의 특성을 강화하고 덤으로 PPL도 소화했다.

그래서 욕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더킹’은 CF 카피나 홈쇼핑에 나오는 말을 대사로 썼다. 간접광고가 직접광고가 됐다.

이곤(이민호)이 커피를 마시면서 “황실의 커피와 맛이 똑같다”고 말하고, 조은섭(우도환)이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김치를 꺼내며 라면과 함께 먹었다. 김고은은 지금도 멀티밤을 얼굴에다 돌리고 있을 것 같다. 정은채는 어디쯤에서 LED 마스크를 쓰고 있을 것 같다.

PPL에 대해 한 마디만 더 하고싶다. PPL이 빠듯한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한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온전한 제작비를 마련해 드라마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직접광고가 아닌 간접광고로 녹여내, 광고주와 제작진, 시청자에게 모두에게 득이 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했다. 제작자는 과도한 PPL로 돈을 많이 번 것 같지만, 이야기의 몰입도를 크게 약화시키고 드라마의 맥을 끊어놨다면 제작자에게도 결국 마이너스다.

작가가 대본에 PPL 관련 대사를 써주면, 모두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현실도 바꿔져야 한다. 사실 작가는 PPL 관련 대사를 넣기 싫어한다. 자신의 작품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PPL이 몰아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일이 일어난 것은 김은숙 작가가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사실상 제작자도 겸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때로는 창작성과 사업성은 충돌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되면 내부적으로 견제장치가 없게 된다. 배우들은 특고(特稿)작가인 김은숙에게는 ‘을’의 관계이기 때문에 광고성 행위와 대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2002년, ‘겨울연가’를 촬영할 때의 일이다. 용평리조트 식당에서 배용준(이민형 역)이 최지우(정유진)와 음식을 먹고 계산을 할때 배용준이 엘지 카드로 계산하는 걸 노출시켜주면 한번당 수천만원을 받게 돼있었다. 하지만 배용준이 “아니, 내가 왜 특정카드를 계속 사용해야 하나”라면서 거부해 제작자를 힘들게 했다.

힘이 없는 배우들에게 PPL을 거부하라는 게 아니다. 다각도로 견제장치가 있어야 불량식품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얘기다. 돈만 생각하지 않겠다는 제작자의 각성이 우선 중요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배우, 시청자들도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