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지난 28일 12회를 마지막으로 시즌 1이 끝났다. 주된 내용은 이익준(조정석 분), 안정원(유연석 분), 김준완(정경호 분), 양석형(김대명 분), 채송화(전미도 분) 등 40대 초반의 의사 5인방이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생활과 우정이다. 각 에피소드도 극적 장치 없이 병렬적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드라마가 주는 힘은 무척 강했다. 주 1회 편성으로도 최종회 시청률이 14.1%를 기록했고, 좋은 반응과 큰 화제성을 만들었다. 나는 실제로 이런 의사들만 있다면 매일 병원에 가고 싶다. 그 정도로 환자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의사들이었다.
‘굿닥터’의 정의는 여러 각도에서 내릴 수가 있는데, ‘슬의생’ 5인방처럼 환자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환자 편에 서서 치료와 대화를 해주는 의사가 ‘굿닥터’인 것만은 사실이다. 아마 의사와 환자 간 ‘라포르(rapport·관계 형성)’가 가장 잘된 사례일 것이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환자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할 수도 있고, 희망에 부풀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들 5인방은 실제 의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슬의생’에 등장한 착한 의사 5인방이 현실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의사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의료 자원 부족에 시달리던 대구 지역에 기꺼이 자원했던 의료진의 숭고함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신원호 PD-이우정 작가팀은 오랜 기간 의사와 환자들을 만나 취재했다.
나도 기자지만 그들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취재한다. 그렇게 해서 실제 의사의 치료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상을 덧붙여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니 현실과 판타지의 조화다. 병원에 저런 의사 한 명이 있을 수는 있어도 5명이 한곳에 모여 있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슬의생’의 의미는 기존 드라마의 작법과 많이 다르다는 데 있다. 많은 드라마의 전개원리는 인물 간의 갈등이다. 이의 최고봉은 오랜 기간 김수현 작가였다. 김 작가는 사람 속에 있는 한 가지 성격을 확대해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인물들의 성격이 극단적이다.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 사랑하는 남녀 관계 모두 극단을 달린다. 인물들을 그렇게 배치해놓으면 스토리가 별로 없어도 갈등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해진다. 첨예한 충돌은 스파크가 날 정도다. 외형적으로도 막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수현 작가는 변화해야 할 새로운 가치와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낡은 가치관(예: 가부장제)의 충돌로 막장에 대한 면죄부를 얻었다.
반면 ‘슬의생’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기존 드라마 작법과는 많이 달랐다. 인물 간 갈등이 거의 없다. 소소한 의견 차이는 있지만, 드라마에서 말하는 ‘악인’ 캐릭터가 전무하다. 인물 간 갈등 없이 무슨 수로 드라마가 진행될까? 소소한 에피소드다. 소소하지만 진정성이 있기에 강한 힘이 나온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전미도(채송화 역) 역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큰 자극이 없는데도 계속 보게 만든다. 잊고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 바 있다.
마지막 회 최고 감동 순간의 에피소드. 산부인과 의사 양석형(김대명 분)에게 진료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산모들이 문진시간 초과로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안에서 “아기가 사산한 것 같다”는 석형의 말에 한 임산부가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고, 석형은 “다 울고 가세요”라며 기다려준다. 아기를 잃은 엄마의 고통에 공감하는 산모들이 묵묵히 기다리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복도의 임산부들이 자신의 배에 손을 대며 모두 숙연해졌다.
이런 장면은 장르물이나 로맨스물 이전에 우리의 삶을 잘 보여줘 공감 가게 한다. ‘슬의생’은 인간에 대한 차분하고도 진지한 관찰 속에서 드러나는 가감 없는 모습에서 인물의 매력들을 끄집어낸다. 신원호-이우정의 이런 작법은 드라마 제작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