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 채제공, 실학과 함께하다’
[헤럴드경제(수원)=박정규 기자] 실학박물관과 수원화성박물관은 올해 공동기획전을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전시주제는 ‘정조대의 명재상 채제공과 실학’이다. 전시는 오는 19일 부터 8월 23일까지 실학박물관 전시를 시작으로 오는 9월 3일부터 10월 25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마무리된다. 조선후기 경기문화를 대표하는 두 기관이 협력한 공동기획전이다.
■특별전시의 구성은 크게 4부로 구성했다.
▷1부는 채제공의 출신배경과 정조년간 재상으로서의 행적이 중심이다. 서울경기지역 명가(名家) 후예로서 그가 18세기 남인세력의 영수로 부상할 수 있는 배경을 전시로 풀었다. 1788년(정조12) 임금이 친히 어필로 우의정에 임명하는 ‘비망기’를 비롯해 재상으로 재임하면서 올렸던 상소들을 통해 채제공의 정치적 생애를 조망했다. 훌륭한 군주에게 훌륭한 신하가 있듯 18세기 문화 중흥을 이끈 탕평군주 정조를 보필한 명재상 채제공의 위상을 드러내고자 했다.
▷2부는 실학과 채제공의 학문적 관련성에 주목했다. 채제공은 국가개혁을 위해 반계 유형원의 학문을 계승했고 성호 이익의 학문을 후배학자들에게 권면했다. 채제공은 열린 시각으로 서양의 학문을 실용적 차원에서 활용을 생각했다. 그가 북돋아주었던 실학자 정약용 ‘죽란시사’ 관련 유물과 이가환의 ‘금대전책’에서 채제공과 실학자와의 교유를 확인할 수 있다. 정약용 등은 채제공이 죽은 이후 직접 ‘번암고’라는 문집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다.
▷3부는 시대 변화를 읽은 뛰어난 관료로서 채제공의 활동을 다뤘다. 그의 대표적인 공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신해통공(辛亥通共)’은 육의전(六矣廛) 등이 점유한 특권적 상업 독점권을 폐지하는 조치였다. 채제공은 이미 몇차례 발의됐으나 실패를 거듭했던 통공책을 실현했고 영세소민들의 삶을 보호해 주었다.
서울에서 상업 활성화에 기여한 신해통공의 단행은 영상작품 ‘신해통공-상생의 씨앗’으로 연출된다. 다음으로 채제공이 처음부터 총괄했던 신도시 수원 화성의 건설은 정조 시대에서 최대 국책사업이었다. 여러 실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며 진행한 이 사업의 전모를 이번 전시에 연출해 보았다. 12폭의 ‘수원화성도’ 병풍을 통해 상업물류의 중심으로 부상했던 조선 최고의 신도시를 관람객들이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4부는 ‘채제공, 그림과 기록으로 남다’라는 섹션으로 보물로 지정된 채제공 초상과 그가 죽은 후 곡절 끝에 이루어진 ‘번암문집’ 간행과정을 전시로 연출했다. 특히 채제공의 행적을 기록한 한글필사본 ‘번상행록’은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유물로 가치가 높다.
이처럼 조선후기 개혁의 실천에서 채제공은 위상은 뚜렷했다. 그는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했고 소외받던 영세민과 지방민을 포용했으며 변화를 바라는 시대적 요구를 정책으로 추진했다. 그로 인해 재야 실학의 학문적 성과는 실현의 기회를 얻었다.
오늘날 박물관과 학계는 실학적 견지에서 실질적 성과를 이룬 역사적 인물을 ‘관인 학자’로 주목하고 있다. 지나친 명분론과 헛된 이념의 시대를 반성하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시대가 그런 인물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주요 전시유물은 다음과 같다.
‘채제공 초상 시복본’은 정조의 명을 받들어 궁중화가 이명기가 그린 채제공의 전신좌상 시복본 초상이다. 화면 좌측에는 채제공이 직접 쓴 자찬문이 있다. 자찬문 내용대로 채제공은 정조로부터 선물 받은 부채와 선추를 영원히 기념하려는 듯 손을 노출시켜 부채와 선추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연출했다.
‘번상행록’은 한글로 기록된 채제공의전기이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되는 유물로 순한글 필사본이다. 재상 채제공의 행적을 집안의 부인들이 알 수 있게 한글로 옮긴 책으로 총 2책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이 전시이전까지 1책만이 수원화성박물관에 ‘상덕총록’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왔는데 자료조사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공개할 수 있게 됐다.
이 유물은 경북 안동 화경당(和敬堂) 류이좌(柳台佐) 가문에서 전해왔다. 류이좌 어머니는 판서 이지억의 딸로 채제공과 이종사촌 관계로 이같은 인연으로 안동에서 유물이 전해져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책의 내용은 채제공이 어렸을 때부터 1793년 수원유수에 제수되는 부분까지이며 수원화성박물관에 소장된 ‘상덕총록’ 앞부분에 해당된다.
‘정조가 친히 내린 우의정 임명 비망기’는 1788년(정조12) 2월 11일 정조가 채제공을 의정부 우의정에 임명하라는 비망기(備忘記)이다. 이것으로 채제공은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100여년 만에 최초의 남인 출신 재상이 됐고 이후 조정에는 남인계의 진출이 활발해졌다. 대체로 비망기는 1780년 이후 승정원의 사알(司謁)이 승지에게 전하면 승지가 1통을 베껴 쓴 것을 반포하도록 했다. 이 문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정조가 직접 써서 채제공에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가환과 정약용이 교정한 채제공의 문집, ‘번암고’는 채제공이 쓴 기문(記文)과 서문(序文)을 편집하여 필사한 책이다. 이가환과 정약용이 교정했다는 기록이 첫장에 필사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