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미 방위비, 반반씩 낸다”더니

-이젠 “한국 1/3만 낸다”며 증액 압박

-미 언론 “인상 합당한 근거 제시해야”

-“과한 요구, 태평양전략에 손해” 지적

[김수한의 리썰웨펀]
주한미군이 A-10(선더볼트-Ⅱ) 대전차 공격기에 무기 장착 시범을 보이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지난해부터 이어진 한미 방위비협상 줄다리기가 신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우리의 외교부) 장관 등 관계부처 책임자를 총동원해 한국을 향해 방위비를 더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5년여간 매년 1년에 9000억~1조원을 방위비로 내왔던 한국에게 앞으로는 매년 6조원을 내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년간 우리 정부의 방위비 분담금은 2014년 9200억원, 2015년 9320억원, 2016년 9441억원, 2017년 9507억원, 2018년 9602억원이다.

미국의 이러한 방위비 증액 태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업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상대방에게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돈을 청구해 기를 꺾은 뒤 상대의 사정에 맞춰 조금 깎아주는 체하면서 실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까지 미국은 한국이 방위비로 상당한 액수를 부담하고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미 행정부에 한국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할 때도 미국 내에서는 '한국은 이미 상당히 큰 부담을 지고 있다'며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 그의 지지기반인 미국 보수층을 대변하는 보수적 싱크탱크(연구기관)에서 낸 보고서마저 잇따라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에게 도움이 되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액수는 적지 않다'며 트럼프를 달래고자 했다.

트럼프 당선(2016년 11월 8일)을 1주일 앞둔 2016년 11월 1일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아메리칸액션포럼(AAF)은 미국이 주한미군 덕분에 오히려 방위비를 절약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펴내 화제가 됐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도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에 이익"=AAF의 ‘동맹국 방위비 분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군 주둔 비용의 41%인 7억7500만달러(약 9000억원)를 부담하고, 나머지 59%인 11억달러(약 1조2700억원)는 미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AAF 보고서는 한국, 일본, 독일 3국에 있는 미군기지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다른 대안보다 미국 입장에서 비용이 절감된다는 분석도 내놨다. 만약 미군이 일본에 항공모함 기지를 배치하지 않으면 더 많은 항공모함 전투군을 투입해야 하고, 해당 비용이 500억 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시 당선인 진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던 인사를 상당수 보유한 미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도 2016년 11월 16일 펴낸 '2017년 미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직접 자금 제공과 인건비 분담, 병참 지원, 시설 현대화 등에 9억달러(1조588억원)를 내고 있다"면서 "상당한(substantial)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트럼프가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주장했던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은 근거가 희박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16년 4월 주한미군사령관 인준을 위한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빈센트 브룩스 미 육군대장도 당시 청문회에서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상당히 부담하고 있다”며 “미군이 미국에 주둔하는 것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도 2016년 4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방위비 분담금은 우리도 매년 9000억원 넘게 분담하고 있는데 이건 일본에 비해서도 GDP 대비 부담률이 더 높은 것”이라며 “미국도 (이런 부분을) 충분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기준 국회예산처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국, 일본, 독일 3국의 주둔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 8361억원(7억8213만달러), 일본 4조4000억원(38억1735만달러), 독일 6000억원(5억2495만달러)이었다. 당시 GDP는 한국 1조1500억달러(약 1333조원), 일본 5조9800억달러(약 6930조원), 독일 3조3700억달러(약 3905조원)로 GDP 대비 분담율은 한국 0.068%, 일본 0.064%, 독일 0.016%로 한국이 가장 높았다. 이런 양상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6년 기준 한국 GDP는 1조4043억달러(1627조원, 세계 11위), 일본 GDP는 4조7303억달러(약 5482조원, 세계 3위), 독일 GDP는 3조4948억달러(약 4050조원, 세계 4위)이다. 당시 GDP 대비 방위비 분담율 역시 한국이 0.05%로 가장 높았고, 일본 0.04%, 독일 0.025%로 뒤를 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한국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 오히려 '소탐대실'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1월 24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정책으로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의 새로운 패권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은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을 압박하는 것인데 분담금 논란으로 한국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면 이런 대전략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 언론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분담금 인상 압박을 미 당국자들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해지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4일 미 CNN방송은 미 의회 보좌관과 행정부 당국자를 인용, "올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 금액을 50억달러(약 5조7900억원)로 올렸다"며 국무부와 국방부 당국자들이 이 금액을 내리려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당국자들은 이를 47억달러(5조4400억원)로 내리도록 겨우 설득했는데, 이 금액조차 난데없이 등장해 당국자들이 여러 근거를 동원해 금액을 정당화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 당국에서도 인상 요구 근거가 미비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요구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미 당국자들은 한국 분담금 인상을 위해 오물처리 등 일상적인 항목부터 군사대비태세 등의 항목까지 범위를 넓혔다고 해당 의회 보좌관은 전했다. 금액을 높여 부른 뒤 나중에 인상 근거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 미국이 한국에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려면 인상에 합당한 근거부터 제시해야 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매년 약 1조원을 부담하던 한국에게 내년부터 6조원 가량을 청구하려면 이를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무턱대고 높여 부른 자국 정부를 꼬집은 것이기도 하다.

◆주먹구구식 인상 요구 뒤 인상 근거 짜내=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한국의 분담금은 한국 경제로 되돌아간다"며 증액을 재차 압박했다.

또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같은 날 한국이 미군 주둔 비용의 3분의 1만 부담한다면서 방위비를 높이라고 WSJ 기고문을 통해 또 압박했다. 과거 미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은 2조원이고, 한국과 미국이 반반씩 1조원을 각각 부담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전략 재조정'을 통해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비용은 3조원이라고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의 우격다짐식 인상 드라이브에 미 관리들이 이러한 주먹구구식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외교부 장관격인 국무부 장관이 나서 이러한 노골적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은 미국 국격의 상당한 저하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장관은 '한국은 부양 대상이 아닌 동맹'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과 미국 모두 현 상태의 유지를 더는 허용할 수 없는 매우 크고 복잡한 전략적 도전에 직면했다"며 "세계 경제의 동력이자 한반도 평화 유지의 동등한 파트너로서 한국은 자국 방위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도 이런 미국의 주장에 반박할 논리가 충분하다.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최신식 해외 미군기지를 평택에 약 20조원을 들여 구축한 뒤 주한미군에게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주한미군 주둔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내 일각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미국에게 오히려 기지 사용료 및 임대료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미 의회는 주한미군을 현재의 2만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한 법안을 지난 연말 통과시켰다.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에 손해라는 인식이 미 정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방증이다.

국내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는 미국에게 항의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미국 정부의 합리적 태도 전환을 엄중히 요구한다"면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일 한국의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연거푸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것도 트럼프 정부에 대한 국내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은 지난해 11월 "해리스 대사가 관저로 불러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계 미국인인 해리스 대사의 이런 태도는 자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 도를 넘은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가 청와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토를 단 것과 관련, 정치권의 비판 강도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라고 말했다. 설훈 여당 최고위원도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대해 저희가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서도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가 반박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남북협력 관련 부분은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앞서 16일 열린 외신 간담회에서 해리스 대사는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북미관계 교착 상태에서 남북관계 개선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정부의 의지에 대해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