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광역단체 체육회장 출마 후보자의 출마선언 게시물에 올라 있는 댓글. 체육계 후배라며 전화번호까지 공개하면서 불법선거운동을 공언하고 있다. 이번  지방체육회장 선거에서 후보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선거운동은 모두 불법이다. [이미지=페이스북 캡처]
한 광역단체 체육회장 출마 후보자의 출마선언 게시물에 올라 있는 댓글. 체육계 후배라며 전화번호까지 공개하면서 불법선거운동을 공언하고 있다. 이번 지방체육회장 선거에서 후보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선거운동은 모두 불법이다. [이미지=페이스북 캡처]
경기도 체육회장의 선거 공고문. 오프라인 소견발표도 없고, 선거일 모바일기기를 이용해 투표가 가능하다. 그래서 민주선거의 원칙인 비밀투표의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 체육회장의 선거 공고문. 오프라인 소견발표도 없고, 선거일 모바일기기를 이용해 투표가 가능하다. 그래서 민주선거의 원칙인 비밀투표의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법에 따라 오는 15일까지 선거를 통해 각 지방체육회의 새 수장을 뽑아야 한다. 일반 국민들의 관심은 크지 않지만 한국 체육계는 바닥부터 요동치고 있다. 17개 광역단체, 그리고 228개 기초단체의 체육회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그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최대 수백 억 원에 달하는 지방체육회의 예산을 집행하고, 체육회 직원의 인사권을 갖고 있다. 대한체육회장이 ‘한국의 스포츠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에 빗대면 해당 지역의 ‘스포츠 시장(군수, 지사)’인 것이다. 민선체육회장 선거는 간선제다. 지방자치단체 규모에 따라 수백 명의 선거인단이 추천과 추첨을 통해 꾸려지고, 이들이 투표를 한다. 투표가 평일에 실시되고, 선거를 치를 예산도 확보되지 않았고, 투표 및 선거운동 등에 대한 규정도 흐릿한 것이 많다. 그래서 체육계 현장에서는 관권선거(기존 지방자치단체장 쪽 세력이 개입), 불법선거, 깜깜이선거 등 온갖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선거 후 각종 고소 고발이 제기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원래 선거는 말이 많은 법. 하지만 민주선거의 본질을 흔드는 치명적인 약점도 우려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자투표로 인해 민주선거의 4대 원칙 중 하나인 ‘비밀투표’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선거를 통해 당선자를 결정한 전남과 경남은 ‘현장 기표소 투표’를 택했다. 그런데 경기, 대구, 인천, 대전, 강원, 충북 등 은 전자투표 도입을 결정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하는 ‘케이 보팅(K-VOTING)’이라는 온라인투표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인데, 투개표가 편리해 비용절감 효과가 높고 투표율도 제고한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대전시 체육회장 선거의 안내문. 선거일 오전 오프라인 후보자들의 공약발표가 있고, 이 자리에서 PC투표가 가능하다는 것 외에는 기본적으로 모바일기기를 활용한 원격 인터넷투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시 비밀투표 훼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전시 체육회장 선거의 안내문. 선거일 오전 오프라인 후보자들의 공약발표가 있고, 이 자리에서 PC투표가 가능하다는 것 외에는 기본적으로 모바일기기를 활용한 원격 인터넷투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시 비밀투표 훼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참고로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전자투표(e-Voting)는 유권자 등록과 투표, 개표, 검표 등 일련의 선거과정에 걸쳐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IT 기술을 활용한 선거관리 방식이다. 이는 크게 투표소 전자투표(Poll Site E-Voting)와 원격 인터넷 투표(Remote Intenet E-Voting)로 나뉜다. 전자인 PSEV는 투표소에 나와 전자적 방식으로 투표를 하기 때문에 기존 기표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후자인 REV 방식은 말 그대로 정해진 특정장소가 아니더라도 투표가 가능하다. 선거인 개인별 컴퓨터(PC나 스마트폰)를 통해 투표가 이뤄진다. 당연히 가장 편리하지만 시스템 보안이나 비밀투표 원칙 침해 가능성 때문에 공직선거에서 전면도입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 체육회장 선거에서 택해진 ‘전자투표’는 기본적으로 REV방식이다. 투표에 앞서 오프라인 소견발표를 하는 경우는 현장 투표(현장의 PC)를 실시하지만 REV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특히 경기와 대구의 경우는 아예, 오프라인 소견발표를 없앴기 때문에 100% REV방식으로 치러진다. 참고로 대한체육회장 및 대한체육회 산하 중앙경기단체의 회장선거는 이런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바로 공정성 때문이다. 아직 REV 방식의 전자투표는 비밀투표 훼손의 위험성을 완벽하게 방지하지 못한다. 여기에 최근 지방체육계에서 선거와 관련돼 벌어지고 있는 천태만상은 이 취약점이 악용당할 소지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모 후보자의 SNS 게시물에는 실명과 함께 휴대폰 번호까지 공개하며 ‘투표권 3장은 행사해드릴 수 있습니다’는 댓글이 올라와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해당 체육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특정후보를 위해 움직인다는 정황이 감지되고 있다.

이번 지방체육회장의 선거인은 모두 체육인이고, 특정 후보자 및 그들을 돕는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갑을관계의 ‘을’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선거일에 이들을 불러 내가 보는 앞에서 투표하라고 하면 비밀투표의 원칙은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인천경실련)은 성명을 통해 인천시체육회장 선거와 관련해 “공정한 비밀투표를 보장해야 한다. 사상 첫 민간인 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투표방식, 선거관리 규정 등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우선 무기명 기표소 투표방식에 비해 모바일 투표방식이 선거운동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이번 선거에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는 대한체육회의 송명근 부장은 “비밀투표가 훼손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고 설명했다. 경기도 체육회장 선거의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달주 교장(태안초)도 “우려는 있지만, 전자투표의 장점이 워낙 많아 고심 끝에 채택했다”고 말했다. 스포츠와 선거의 핵심가치는 공정이다. 그런데 둘의 결합된 이번 지방체육회장 선거는 역설적으로 공정성 훼손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록 공직선거가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적인 영향력이 크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눈이 먼 일부 체육계 인사들이 끔찍한 선거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대한체육회와 각급 시도체육회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끔찍한 범죄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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