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 네덜란드에서 배 농사를 짓는 바스 폐이텔 씨는 올해 배가 풍작을 이뤘지만, 75%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밭에서 그대로 썩게 둘 예정이다. 예년보다 턱없이 떨어진 가격 때문에 많이 팔아봤자 되려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1㎏에 50유로센트에 팔았던 고급 배가 올해엔 15유로센트밖에 나가지 않는다. 폐이텔 씨는 “올해는 인부를 고용해 저품질 배까지 딸 필요가 없다”면서 “일주일 뒤 수확을 시작하려 했는데 상황이 매우 나쁘다”고 토로했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요즘 유럽 농가는 ‘푸틴발(發) 가격하락’ 때문에 울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서방의 대러제재에 맞서 지난달 유럽의 과일과 유제품 등 식품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도입하면서다.
이에 따라 매년 유럽 농식품의 4.2%가 팔렸던 러시아로의 수출길이 막혔다. EU가 지난해 51억유로(약 6조8300억원) 상당의 농식품 수출을 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 피해 규모는 막대하다.
뿐만 아니라 수출로가 차단되면서 유럽 농식품 시장에선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져 가격의 하방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수입 금지 직전 3개월 간 식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내림세를 걸었던 만큼 이번 조치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지난달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물가상승률이 유럽중앙은행(ECB) 목표치 2%를 크게 밑도는 0.3%를 기록한 데도 식품값 하락이 큰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다.
실제 수입 금지 조치가 발효된 이래 네덜란드의 오이와 토마토 가격은 80% 떨어졌으며, 체코의 사과값은 지난해 대비 70%의 낙폭을 기록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등 복숭아 주요 산지에선 복숭아가 예전에 비해 평균 30~50%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농식품 소비를 촉진시켜 농가를 살리자는 움직임도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로의 식품 수출액이 비교적 적은 편인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티안 슈미트 독일 농업장관은 지난 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과일을)먹어야 한다”면서 하루 최소 5번 과일을 먹자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