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손자야! 부디 내 뒤를 이어 세계적 골퍼가 되어다오. 그리고 이 할애비가 이루지 못한 그랜드 슬램을 꼭 달성하거라”. 이제 곧 전설이 될 골퍼는 세상을 떠나기 전 손자를 불러 놓고 유언을 남긴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그립과 스윙으로 피나게 연습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랜드 슬램을 하며 세계를 제패한다. 이런 동화 같은 얘기가 실제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PGA 챔피언스 투어 해설을 하면서 토미 아머 3세(Tommy Armour III)가 리더 보드 상단에 이따금 올라오자 나는 그의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혹시 꿈 같은 뒷얘기가 있지 않을까 하고. 그가 바로 전설 토미 아머(별명 실버 스콧)의 손자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토미 아머는 PGA 투어에서 25승을 거뒀다. 마스터스를 제외한 3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이름을 딴 골프 용품도 있지만 나와 인연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토미 아머가 바비 존스와 한 시대에 뛰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기록은 대단하다. 그의 손자 토미 아머 3세는 챔피언스 투어를 벌써 10년째 뛰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우승이 없다. 물론 챔피언스 투어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PGA 투어에서는 2승을 거뒀다. 이런! 너무 싱거운 이야기 아닌가? 실망하기 직전에 나는 그가 엄청난 기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직전까지 ‘PGA 투어 72홀 최저타 기록’이 그의 자리였다는 것을 말이다. 72홀에 254타(26언더파). 이 기록은 그가 지난 2003년 PGA 발레로 텍사스 오픈 때 세운 것이다. 발레로 텍사스 오픈? 들어본 대회라고? 오랜 골프 팬이라면 그럴 수 있다. 최경주 선수가 2라운드 때 선두 턱밑까지 치고 올라갔다가 결국 공동 7위를 기록한 대회다. 토미 아머 3세는 이 대회 때 ‘첫날 64타’ ‘이틀째 62타’ 그리고 ‘사흘째 63타’를 기록했다. ‘마지막 날 65타’를 쳤는데 이 날 보기가 두 개나 나왔다. 사흘째까지는 보기 없는 플레이를 하던 그였는데. 2위와는 일곱 타 차이가 났으니 이미 우승은 확정적이었을 터. 역사에 남을 기록에 대한 부담이 보기로 이어졌을까? 할아버지 토미 아머가 세운 대기록에 견줄 그 어떤 업적을 반드시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토미 아머 3세는 ‘티 에이 쓰리(T.A.3)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할아버지 후광이 강하게 남은 것이다. 큰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당시로는 가장 비싼 레슨비를 받는 교습가로 변신한 토미 아머. 그 대가에게서 손자가 골프 기초를 탄탄하게 배웠으리라고 지레 짐작하기 쉽다. 나도 그렇게 넘겨 짚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토미 아머 3세는 1959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 토미 아머는 1968년에 세상을 떠났고. 아홉 살에 할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그랬으니 시간당 50달러나 했다는 토미 아머의 레슨은 거의 받지 못했을 것이다. 에게? 겨우 ‘시간당 50달러’라고 얕보지 말기 바란다. 1950년대 레슨비이니 어마어마 하다. 손자가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난 것 외에도 할아버지에게 골프의 모든 것을 배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 또 있다. 조부와 손자 둘의 스윙 방법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토미 아머는 클래식컬한 스윙을 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자라고 골프도 그곳에서 일가를 이룬 토미 아머 아닌가? 이에 비해 손자 토미 아머 3세는 원 플레인 스윙을 한다. 둘은 그립 잡는 방법도 다르다. 토미 아머는 핑거 그립을 잡으라고 가르쳤다. 손가락으로 잡는 그립 말이다. 토미 아머 3세가 어떤 그립을 잡고 있는지 대놓고 나오는 영상이나 자료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팜 그립을 잡고 있다고 확신한다. 손바닥으로 잡는 그립이 팜 그립이다. 그의 원 플레인 스윙은 팜 그립을 잡아야만 완성되는 스타일이다. 토미 아머 3세 스윙은 원 플레인 스윙의 원조 ‘모 노먼’의 스윙과 판박이다. 이 스윙으로 토미 아머 3세는 PGA에서 2승을 거뒀다. 첫 우승은 1990년 피닉스 오픈이다. 그가 서른 한 살에 늦깎이 우승을 할 때만 해도 뒤늦게라도 할아버지 명성을 잇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다음 우승까지는 무려 13년이 걸렸다. 그것이 바로 대기록으로 남은 발레로 텍사스 오픈인 것이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마흔 네 살에야 세운 이 대기록으로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내게는 내 골프가 있다’고 말은 해도 할아버지 명성에 필적할 업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겠는가?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것은 말하나 마나이다. 그는 PGA 투어에 늦게까지 도전했다. 성적을 내지 못해 투어에서 밀려난 뒤에도 계속 큐스쿨에 나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PGA 큐스쿨에 참가한 것은 지난 2012년. 그의 나이 52세였다. 당시 큐스쿨 참가자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았다. 이 대목에서 프로 선발전에 합격한 프로 동기 90명 중에 마흔 네 살로 나이가 가장 많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졌다. 190cm에 육박하는 큰 키에 짧은 백스윙과 내던지는 듯한 팔로 스로우를 가진 토미 아머 3세. 그는 스윙 템포가 여전히 빠르다. 아직 가슴이 뜨거워서 그럴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그가 세운 72홀 역대 최저타. 전설이 된 할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은 대기록이다. 이 기록은 지난 2017년 천재 조던 스피스가 253타를 기록하면서 14년만에야 깨졌다. 나는 토미 아머 3세가 은퇴하기 전 챔피언스 투어에서 꼭 1승을 거두기를 기원한다. 또 얼핏 보기엔 낯선 그의 스윙이 결코 엉터리가 아니라는 얘기도 하고 싶다. 토미 아머 3세를 보고 싶다면 ‘골프채널코리아’에서 방영하는 PGA 챔피언스 투어 중계를 시청하기 바란다. 물론 내가 중계할 때는 더 놓치지 않기를. 채널 번호를 남기는 이유는 더 이상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다. 김용준 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KPGA 프로 & KPGA 경기위원)● ‘골프채널코리아’가 나오는 채널=KT올레TV(55) BTV(133) LG유플러스TV(102) CJ헬로(183) ABN아름방송(68) CMB(8VSB: 67-3) 딜라이브(157) 서경방송(69) 울산방송(147) 충북방송(67)제주방송(96) 현대HCN(519) KCN금강방송(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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