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루’와 망치까지 동원되면서 국회가 아수라장이 됐다. 덕분에 빠루가 못 뽑는 데 사용하는 노루발 장도리라는 것을 배웠다. 나이 들어서도 무엇인가 배우면 좋은 것인데, 모처럼 배운 단어가 공사판에서 사용하는 일본어의 잔재라고 하니 씁쓸하다. 더욱이 대한민국 국회의 전신인 임시의정원 설립 100주년에 일어난 일이라니 부끄럽기까지 하다.
어릴 적부터 꿈이 변호사였는데,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거쳐 대한변호사협회장까지 되었으니 그저 과분할 따름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하면서는 법원, 검찰과의 교류를 통하여 각 직역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이 되니 사회 각계 인사들과의 교류 폭이 더 확대되면서 훨씬 넓은 세상을 배우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는 매번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된다.
지금은 적용될 수 없는 말이 되었지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법조인들은 한때 개천에서 난 용들이었다. 실제로 선배 법조인들을 만나면 모두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하나쯤의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인들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불법적인 분야에서 최고로 재미있는 것은 도박이고, 합법적인 분야에서 최고로 재미있는 것은 정치라고 한다. 정치에 얼마나 많은 변수와 스릴이 함께 하는지를 함축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지위를 취득하는 절차가 시험과 선거라는 차이점 때문인지 법조인과 정치인들은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옳고 그름을 대하는 자세에서 차이가 난다. 법조인은 분쟁에 있어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최종적으로 진실이 승리하는 판결을 받고자 노력한다. 이에 반하여 정치인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무엇을 만들면 그 자체로 옳은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도저히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갈등도 소통과 합의를 통하여 하나로 이루어 내는 것이 정치인의 역량이다.
둘째, 변화하고자 하는 속도가 다르다. 법조인은 법률의 자구에 충실하여,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치인은 사회 각계각층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법률안을 시시각각 발의한다. 다만, 법률안 발의가 ‘일단 하자’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 끝에 나온 산물이었으면 한다.
셋째, 위법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법조인들은 배우고 경험한 바에 근거하여 매 순간 자신의 행위가 현행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생각하므로 크게 일탈행위를 하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방법이나 절차의 위법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일반인이라면 사법부에 가서 처리해야 할 사안에 쉽게 빠루와 망치가 동원되는 곳이 국회이다.
넷째, 소수자를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르다. 정치인은 소통과 협치를 내세우다가도 최종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을 사용한다. 법조인은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다수결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의 소수약자 편에 선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때로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는 것은 정치인들이 법조인들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이다. 지금의 국회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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