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고졸임원’ 신화 쓰고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으로 ‘열정의 삶 ’… “공직사회 전문가 조직 탈바꿈 위해 Be이즘보다 Do이즘 확산돼야 ”
고졸ㆍ여성ㆍ호남ㆍ삼성…. 얼핏봐도 뭔가 어색한 단어 조합이다. ‘고졸’과 ‘여성’, 그리고 ‘호남’은 우리 사회가 좀더 고민해야 할 키워드다. ‘삼성’ 역시 단어가 주는 의미가 작지 않다. 좀 과장하면 국가 경제의 성장동력이면서 동시에 우리 경제가 극복해야 할 과제와 한계도 내포한 단어다.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은 이런 심오한 4개 단어의 교차점에 자신의 정체성을 다이아몬드와 같이 단단하고 반짝거리는 모습으로 구축한 특별한 존재다.
양 원장은 1967년 전남 화순에서 오남매 중 오빠 둘과 남동생 둘 사이 셋째 딸로 태어났다. 엄마의 조수 노릇을 하며 할머니와 동생들을 챙기다 초등학생 때 이미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동생을 업은 채 밭일을 하고 귀가하면 밥상을 차렸다. 힘들었다. 하지만 학교에 가면 눈빛이 똘망똘망해졌다. 학교에선 특유의 똘똘함으로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오지랖이 넓었다. 주위를 잘 챙겼다. 엄마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씻기고 같이 놀아주기까지 했다. 당산나무 그늘에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심부름도 곧잘 했다. 동네 어른들은 이런 그를 ‘수말스러운( ‘어른스럽고 의젓하다’는 의미의 호남 사투리) 아이’라고 불렀다 한다.
형편이 어려워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먹구름이 드리운 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였다. 아버지 건강이 악화됐다. 고등학교 진학 원서를 쓰기 전날 말수가 적은 아버지는 향자를 불러앉혔다. 힘들게 들리는 탁한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내가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미안하다. 엄마와 할머니,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
청천벽력 같은 아버지의 일종의 유언 앞에서 어린 소녀는 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자신에게 의지하는 아버지께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시선을 피하며 이렇게 약속했다. “아빠, 걱정 마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17살 소녀의 다짐은 이후 30년 간 소녀의 인생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다음날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실업계인 광주여상 원서를 썼다. 의아해하는 선생님에게는 “선생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했다. “그랬지만 그때 사실은 내 인생이 이제 한번 끝이 나는구나. 여기서 접어야 되는구나. 모든 것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소녀시절’ 양향자 원장의 이야기다.
▶어려서 수말스러웠던 아이, 집안 살림도 공부도 1등=고 1때 아버지를 여읜 딸은 학비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집에는 장학금을 받는다고 둘러댔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주말마다 광산에 나가 돌 골라내는 일을 했다.
그래도 소녀는 소녀였다. 실업계 고교로 간 이후 마음은 좋지 않았다. 방과 후 귀가길에 혼자 다리 건너에 앉아 물가에 비친 달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달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때 10년 후의 모습을 떠올리며 하루 하루를 버티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내가 10년후 이런 모습이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생각을 늘 했어요. ‘아빠한테 내가 한 약속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알아서 해야지라고 계속 다짐했어요.”
학비가 없어 선생님에게 돈을 꾸기도 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냈던 고교 3년은 지금 돌아봐도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그런 그에게 극적 반전의 계기는 다가왔다. 그리고 그 기회를 꼭 붙잡았다. 삼성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하던 때였다. 연구원 고졸 보조직으로 채용된 것이다.
지난 1985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을 양 원장은 잊지 못한다. “내 인생에 빛이 들어온 순간”이었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 모든 시설이 한 치의 더러움도 없이 깨끗하고 깔끔했다고 한다. 입사 첫 주에 교육생 전체 대표가 된 그는 기흥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됐고, 마음 속으로 ‘여기에 뼈를 묻겠다’는 다짐까지 했단다.
하지만 고졸 출신 보조연구원과 해외 유학을 다녀온 박사급 연구원들은 노는 물(?)이 달랐다. 보조연구원은 출근해도 자기 자리가 없었다. 커피 타고 복사하는 일 외엔 자존감을 찾기가 어려웠다. 입사 후 3년쯤 되니 입사 동기들 대부분 퇴사했다.
양 원장이 그 틈바구니 속에서 모멸감과 비아냥을 이겨내고 공부하고 연구하며 스스로를 갈고닦아 입사 28년차인 2013년 삼성전자 반도체 임원으로 발탁되기까지의 에피소드는 밤새 얘기해도 끝낼 수 없을 것이다. 굳이 압축한다면 “한단계 진일보하기 위해 수많은 투쟁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양 원장은 고졸, 여성의 한계를 딛고 성공신화의 한 주인공이 됐다. 일각에서 지금도 양 원장의 삼성 임원 발탁이 기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인간 양향자’의 고생과 눈물이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임원 발탁 소식을 들었을때의 당시 소회는 이렇다. “공교롭게도 2013년 12월 5일에 제가 임원이 됐어요. 그날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인데, 딱 30주기였어요. 제가 17살에 47세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로부터 딱 30년 후인 아버지 제삿날에 47살인 제가 임원이 된거죠. 그동안 아버지가 항상 지켜보시고 계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최초의 고졸출신 삼성전자 여성 임원은 임원 3년차를 맞은 2016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삼고초려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표창원, 조응천, 김병기 등이 이때 함께 영입된 이른바 ‘더벤져스’ 정치인들이다. 그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험지로 거론되던 광주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지만, 3개월 뒤 열린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및 전국여성위원장에 선출되면서 커리어를 이어갔다.
▶전무후무한 고졸 삼성임원 신화…文대통령 삼고초려로 정계 입문=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광주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고, 지난해 8월부터는 차관급인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에 임명돼 공직 체질개선 방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은 5급 이상 신규 임용 공무원(사무관)의 공직 가치, 리더십, 직무역량 등을 교육한다.
양 원장은 취임 후 삼성, LG, SK 등 국내 대기업 인재개발원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민간기업 인재개발원의 효율성 등 장점을 국가 조직에 이식시키는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민간기업 인재개발원은 교육 및 평가 결과를 이후 인사 배치 때 적극 활용한다. 교육생들이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국가인재개발원은 지금까지 공무원들이 잠시 쉬어가는 장소로 여기는 이가 많았다. 이에 올해 5급 공채시험 합격자 대상으로 실시하는 2019년 신임관리자(300명) 교육 과정부터 평가 결과를 인사 배치와 연계하는 방식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조직 수장이 된 양 원장은 맨 먼저 ‘필요한 일’과 ‘필요 없는 일’을 나눴다. 각 부서별로 하지 않아도 될 업무 목록을 3개씩 제출받아 과감히 없앴다. 문제가 생기면 실무자를 징계하는 공직사회의 관행적인 병폐를 없애기 위해 조직 내 모든 부서의 업무별 매뉴얼(107가지)도 만들었다.
“공직사회는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고 옷을 벗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인데 이건 아니죠. 실무자 징계 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만약 시스템이 없었다면 사고 책임은 실무자가 아니라 해당 기관의 장에게 있다는 것이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공직문화 개선을 위해 ‘퍼스트 펭귄상’도 제정했다. 퍼스트 펭귄이란 펭귄 무리에서 두려움을 감수하고 맨 먼저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을 뜻하며, 흔히 선구자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열린 첫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퍼스트 펭귄’ 시상식 수상자에게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인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3박6일 참관권을 부상으로 전달했다.
이들과 함께 CES를 참관한 양 원장은 “CES에 동행한 공무원 두 사람이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런 세상을 모르고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한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는 얘기를 하더라. 이렇게 외부 자극을 통해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져야 정부의 DNA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양 원장은 공직사회에 만연한 순환보직제에 대해서도 개선 방안을 연구 중이다. 관리자급 공무원들이 각자의 ‘필살기’ 분야가 있어야 융합형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 원장은 공무원들이 한 부처 내에서 부서를 순환하는 현행 순환보직제에서 탈피해 유사직군별로 여러 부처를 순환하며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지금 공무원들의 관심사는 오직 어떤 자리로 가야 승진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점인데, 공직사회가 전문가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면 ‘무슨 자리를 맡느냐’라는 ‘비(Be)이즘’ 보다는 ‘무슨 일로 기여하느냐’는 ‘두(Do)이즘’이 확산돼야 합니다.”
양 원장은 “삼성에 있을 때 오직 그 일이 천직처럼 여겨졌다”며 “그런데 광주에서 출마했을 때는 정치가 천직처럼 여겨졌고, 지금은 공직이 제 천직 같다”고 했다. “돌아 보면 삼성에서 한 일이 바탕이 돼 지금의 자리에 온 것인데, 지금 하고 있는 일 역시 다음 행보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 될 것임을 예감합니다.”
정리=김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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