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을 상속세 대신으로

‘내 작품이 상속세나 증여세 과세 대상이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평생 그림만 그리는 가장을 뒷바라지한 가족들에게 거액의 세금을 물린다는 생각만 해도 앞이 캄캄해집니다’ 원로작가 A가 내게 하소연했다. 그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 소장가, 상속인은 미술품이 재산적 가치를 지닌 동산이며, 과세대상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이 원해서 만든 작품, 좋아서 구입한 작품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무상으로 주는데도 왜 세금을 내야 하지? 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현행 국내 세법상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상속증여하면 세금이 부과된다.

연로한 A가 상속인이 내야하는 세금 걱정에 잠을 설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A의 사후 상속인은 원하든 원치 않든 수 백점에 달하는 작품을 물려받게 된다. 말이 작품이지 세금 폭탄이다. 게다가 상속세를 납부하려면 상속재산인 미술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데 환금성이 없는 경우 실제거래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거래내역이 있는데도 팔기는 매우 어려운 것은 미술품을 재판매하거나 처음 매입가격을 보장해주는 시장이 극히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세금납부에 필요한 현금이 없는 상속인은 상속 작품을 시세보다 낮거나 가격에 상관없이 무조건 팔아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상속세 폭탄을 피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사유재산인 미술품을 미술관이나 문화재단에 기증해 공공자산으로 만든다. 둘째 상속인이 직접 문화재단 미술관을 만들어 작품을 사회에 환원한다. 문제는 두 가지 방법이 이론상은 가능하지만 현실적인 딜레마가 있다.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려면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원칙적으로 미술관은 예술, 학술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우수 미술작품 및 연구가치가 있는 작품만 기증받는다. 즉 기증절차가 까다롭고, 심지어 기증 자체가 거부되기도 한다. 문화재단미술관을 설립, 운영하는 일은 더 어렵다. 등록 절차에 따른 요건 충족, 등록 이후 관리와 운영, 안정적 재정 확보 등의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미술품 상속증여에 따른 과세는 창작활동과 구매의욕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은 물론

작가, 소장가, 상속인 모두에게 큰 심적,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는 만큼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현실적으로 미술품을 상속세 물납대상의 범위에 포함시켜 현금 대신 작품으로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예술적,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납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안)에 현금으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현행 규정을 개선하여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검토한다는 항목이 들어있다. 정부는 사후를 걱정하는 원로 작가, 소장가, 상속인의 고민을 덜어주고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큰 미술품을 공공자산으로 활용하는 물납제도 도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