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시간에도 주민들 전화 빗발쳐 “쉴 수 없다” -보일러도 안 나오는 소파ㆍ판자ㆍ바닥에서 쪽잠 -“인건비 절약 꼼수…정부, 현장 감독 강화를”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휴게시간이라고 써놓으면 뭐해요. 문 열어달라, 택배 달라 계속 찾는데….”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의 경비실 앞. 경비원 김모(69) 씨가 경비실 창문에 붙여진 휴게시간 안내 종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2시간 (점심), 오후 5시30분 오후 7시30분까지 2시간(저녁), 오전 12시부터 5시까지 (심야) 총 세 번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 1분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경비원은 무조건 ‘24시간’ 아파트를 경비실을 지켜야 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잠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주민들은 수시로 전화를 하고 심지어 직접 찾아와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따지는게 일상이다. 그래서 밥 먹을 때도 자리를 지킨다.
김 씨가 24시간 생활하는 경비실은 약 2평. 별도의 휴게실은 커녕 취침공간이 없어 그는 테이블 옆에 마련된 2m도 안 되는 소파에서 잠을 잔다. 김 씨가 누우니 소파가 꽉 찼다. 그는 “키가 167㎝라 다행히 나는 발을 쫙 뻗고 잘 수 있다. 다른 경비원은 구부리고 자야 한다”고 말했다.
소파 끝에는 유리창을 막아놓은 종이박스가 눈에 띄었다. 외부 시선을 차단하는 일종의 커튼이었다. 김 씨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쪽잠을 자는 것이지만 이를 모르는 주민들은 근무시간에 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씨는 “꼭 뭐라고 안해도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가 내 자는 모습을 보는 게 불편해서 막아놨다”고 했다.
별도의 휴게공간이 있는 아파트는 어떨까. 같은 동네 다른 아파트의 경비원 4명이 쓰는 휴게실에 가봤다. 들어가자마자 냉기가 엄습했다. 온풍기가 있었지만 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곳 역시 침대는 없었다. 소파에서 1명이 잠을 자고 다른 사람은 바닥에서 잔다고 경비반장 A(65) 씨가 말했다. 창고같은 다른 공간엔 두께 약 10㎝ 스티로폼을 덧대 만든 나무 판자가 보였다. 유일한 침대였다. 그는 “이거라도 있는 게 다행이다. 없는 곳도 많다”고 설명했다.
다른 아파트 경비원들의 쉬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24시간 근무기준 공식 휴게시간은 식사시간 약 5~6시간, 야간 4~6시간으로 총 10~12시간이지만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대부분 쉬는 시간에도 주민들의 전화 통화와 각종 지시에 시달려야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이모(62) 씨는 “새벽에 술에 잔뜩 취해 현관 비밀번호를 못누르고 경비실에 찾아와 문 열어달라고 하거나, 잠을 깨워 택배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공식근무시간이 아닌 휴게시간에 일한 것은 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휴게시간 노동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지만 현장은 달라진 게 없다. 이 씨는 “24시간 근무 중에 10시간을 쉬는 시간이라고 잡아놓고 돈만 절약하는 일종의 꼼수”라면서 “문제제기를 해도 잘릴까봐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해진 근로계약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의 노동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 센터장은 “휴게시간에 일을 하는 경우는 근로계약 위반이지만 일자리가 아쉬운 경비원들은 이를 고발하기 쉽지 않다”며 “실질적인 근로 감독과 더불어 휴게시간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배포되는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경비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 근무형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센터장은 “현재 24시간 격일제 근무는 휴게시간이 있더라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밤에 당직을 서는 사람을 따로 두는 당직제나 부분 퇴근제 등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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