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올해로 제 147회를 맞은 디오픈은 스코틀랜드 앵거스에 위치한 카누스티에서 열린다. 이 골프장은 ‘까마귀가 많이 둥지를 튼 곳’이라는 의미에서 골프장 이름인 카누스티(Craw's Nest)가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최초의 프로골퍼 앨런 로버트슨이 이곳에서 10홀을 만들었고, 디오픈이 열리기 3년전에 1857년에 올드 톰 모리스에 의해 18홀로 확장되었다. 그 뒤로 세월이 흘러 제임스 브레이드가 코스를 오늘날과 흡사한 형태로 개조했다고 전해진다. 역대 디오픈을 개최한 14곳의 링크스 코스 중에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가 29회로 가장 많이 열렸다. 그 뒤로 프레스트윅(24회), 뮤어필드(16회), 로열세인트조지스(14회), 로열리버풀(12회), 로열버크데일(10회), 로열트룬(9회)에 이어 카누스티는 8번째이면서 동시에 올해로 여덟 번째로 대회를 개최한다. 올해는 가장 최근에 열렸던 2007년 대회보다 전장이 19야드가 짧아진 파71 7402야드로 치른다. 1번 홀의 티박스 뒤에 갤러리스탠드를 만들면서 줄었으나 난이도는 변함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카누스티에서 주의할 것은 17~18번 홀을 휘돌아가는 베리번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개울(creek)을 번(burn)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특히 골프 역사에 남을 유명한 명 승부 스토리가 많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99년 장 방 드 벨드의 참혹함이다. 지금까지 카누스티에서 열렸던 7개의 우승 스토리를 되짚어보았다.
2007년(136회): 패드레이그 해링턴(277타 연장전)아일랜드인 패드레이그 해링턴이 마지막날에 선두인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보다 6타차 뒤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해링턴은 이날 4개의 버디에 14번 홀에서는 이글을 잡아내면서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해링턴은 파4 499야드인 18번 홀에서 볼을 두 번이나 빠뜨렸다. 티샷이 번에 들어갔고, 서드샷 역시 그린 앞 번에 빠졌다. 하지만 극적인 업앤다운으로 더블보기로 막으면서 4언더파 67타를 쳤다. 반면 선두로 출발한 가르시아는 3미터 거리의 마지막 홀 파 퍼트를 놓치면서 2오버파 73타를 제출했고, 플레이오프에 끌려나가서 결국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해링턴은 이듬해까지 디오픈을 2연패했다.
1999년(127회): 폴 로리(290타 연장전) 카누스티의 코스레이팅은 75.1이고, 슬로프레이팅도 145여서 스코틀랜드에서는 가장 어려운 코스로 악명높다. 이 해가 역대 디오픈 중에 가장 어려웠던 대회로 기록된다. 최근 <골프위크>에서는 지난 25년간 100번의 메이저 중에 평균 스코어가 가장 높은 대회가 카누스티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대회의 주인공은 우승자 폴 로리가 아니고 프랑스의 장 방 드 벨드였다. 마지막날 18번 홀(파4 487야드)에 들어섰을 때 벨드는 3타차 선두여서 더블보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다. 티샷이 푸시가 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두 번째 샷은 갤러리 스탠드 난간을 맞고 튕겨나왔고, 세 번째 샷이 베리번에 빠졌다. 거기서 벌타를 받고 드롭하고서 친 샷이 벙커에 빠져 결국 트리플 보기로 마치면서 세계 랭킹 159위이던 이 지역 출신 프로 폴 로리와의 연장전에 들어갔고, 결국 로리가 클라렛저그를 들어올리게 됐다. 1975년(104회): 톰 왓슨(279타 연장전) 톰 왓슨은 디오픈 사상 5승을 거둔 살아있는 최다승 선수다. 75년 7월13일에 왓슨은 그중 첫 번째 디오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당시만 해도 18홀 연장전을 치르던 해여서 왓슨은 잭 뉴튼과의 18홀 연장라운드 끝에 한 타 차로 제치고 우승을 거뒀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파5 14번 홀에서 칩 샷을 그대로 성공시켜 이글을 기록하며 한 타 차의 승기를 잡았다. 당시 25세 왓슨은 창의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고 어떤 상황에도 잘 적응했다. 무엇보다도 인간미가 넘쳤다. 차가운 영국의 우중라운드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쟁자 뉴튼에게 클라렛저그를 같이 들자고 권하기도 했다.
1968년(97회): 게리 플레이어(289타)1959년 디오픈에서 첫승을 거둔 게리 플레이어는 10년만에 잭 니클라우스, 밥 찰스를 2타차로 제치고 2승을 거뒀다. 플레이어는 3,4라운드 연속으로 ‘스펙터클스’라는 별칭이 붙은, 어려운 파5 14번 홀에서 이글을 잡아냈다. 이 대회는 당시 전장 7252야드로 가장 길었고 악천후에 어려운 코스여서 오버파가 속출했지만 플레이어에게는 예외였던 것같다. 130명이 출전한 가운데 2라운드를 마치고 11오버파 155타까지 70명이 컷으로 추려졌고, 3라운드를 마치고는 처음으로 45명(12오버파 228타 이하)만이 두 번째 커트를 적용받아 마지막 라운드에 나갈 수 있었다. 1953년(82회) 벤 호건(282타)1953년에 벤 호건은 마스터스에서 다섯 타 차, US오픈에서는 여섯 타 차로 우승하고 이 대회에 한 번이자 유일하게 출전해서 매일 더 나은 스코어(73-71-70-68타)를 적어냈다. 호건은 영국의 다이 리스, 호주의 피터 톰슨을 네 타 차로 제치고 우승하면서 메이저 3연승을 달성했다. 그는 대회 일주일 전에 도착해 당시 영국에서 허용되던 스몰볼을 처음 연습한 뒤에 출전했다. 그중에 긴 6번 홀은 마지막날 오전과 오후에 열린 3,4라운드 모두에서 버디를 잡으면서 우승해 ‘호건의 오솔길’로 알려졌다. 교통 사고 이후에도 심한 통증을 견뎌야 했던 호건은 그해에 단 여섯 대회만 출전해 그 중 다섯 대회에서 우승했다. 호건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카퍼레이드 선물까지 받았다.
1937년(72회) 헨리 코튼(290타)라이더컵 미국 팀이 전원 출전한 가운데 열린 디오픈에서 지독한 날씨 끝에 잉글랜드인 헨리 코튼이 우승했다. 마지막 날은 선두 레그 윗콤브가 7번 홀에서 빗속에서 티샷을 하던 중에 삐끗해서 토핑을 해 더블보기를 적어내는 등 불운을 맞닥뜨렸다. 하지만 코튼은 마지막날 흔들리지 않고 71타를 쳐서 결국 2타차로 우승했다. 1931년(66회) 토미 아머(296타)올드 톰 모리스가 설계한 이 코스에 1926년 디오픈 우승자인 제임스 브레이드가 초빙되어 코스를 개조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애든버러 출신의 스코틀랜드인으로 미국으로 이주했던 토미 아머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열린 디오픈에서 한 타차 우승했다. 당시 6월 1,2일(월,화)은 퀄리파잉 대회가 열렸고, 수요일인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대회가 열렸다. 109명이 출전해 이틀은 예선을 치르고 마지막 날 컷 통과한 66명이 오전, 오후 총 36홀 라운드로 승부를 가렸다. 당시에 컷오프 제도를 시행한 것은 마지막날 하루에 36홀 라운드를 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성적이 떨어진 절반을 잘라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