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민화, 현대를 만나다’展 보물급 민화·日 소장 ‘화조도’ 등 눈길
DDP ‘조선 최후의 거장-장승업’展 ‘삼인문년’ 백미…제자들 작품도 한눈에
‘뿌리 찾기’는 인간의 영원한 테마다. 자신의 근거를 찾는 행위를 통해 ‘정체성’이란 선물을 얻는다. 이같은 태도는 한국현대미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옛 그림에서 현대미술의 실마리를 찾는 전시가 열린다. 갤러리현대의 ‘민화, 현대를 만나다:조선시대 꽃그림’전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조선 최후의 거장-장승업×취화선’전이 그렇다.
▶민화에서 한국 추상 원류 찾기=여염집에서 길상을 담아 그렸던 그림이라며, 궁중미술과 문인화에 비해 낮춰 봤던 인식을 한 번에 뒤집는 보물급 민화들이 나왔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는 갤러리현대, 현대화랑, 두가헌갤러리를 모두 활용해 조선시대 화조도 60여점을 선보이는 전시 ‘민화, 현대를 만나다:조선시대 꽃그림’을 7월 4일부터 8월 19일까지 개최한다.
사랑, 부귀영화, 행복 등 전시장소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나 출품된 작품 하나하나가 명품급이라는 건 같다. 현대화랑엔 17~18세기 화초영모도부터 연화도 병풍까지 다양한 크기의 작품이 선보인다. 쌍을 이룬 원앙, 잉어, 꽃과 나비에 이어 연꽃마저도 서로 짝을 이루며 몸을 부비는 자태를 보면 부부의 금슬이 좋기를, 더불어 많은 자녀를 낳아 행복하길 바라는 선조들의 염원이 읽힌다.
민화에 등장하는 아이템이 모두 상징성이 강하다보니, 그 뜻을 알고 보면 전시가 더 입체적으로 읽힌다. 한 송이 값이 열 집의 1년 세금에 버금갔다는 모란은 부귀영화를 뜻하고 나비(접ㆍ蝶)는 70노인(질ㆍ)과 중국음이 같아 장수를 뜻한다.
갤러리현대에는 이보다 현대적 미감의 작품들이 모였다. 모란, 나팔꽃 등 민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꽃들이 패턴으로 등장 추상적 조형미도 느껴진다.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가 아꼈던 그림으로 유명한 ‘연화모란도’(일본민예관 소장), 일본에서 최고 명품으로 꼽힌다는 ‘화조도’(개인소장)도 나왔다. 두가헌갤러리에는 자수 작품이 자리잡았다. 늘 사용하는 베개를 장식했던 베갯모 662점과 활옷 등 생활에서 만나는 민화들이다.
갤러리현대측은 “한국 추상은 서양의 그것과 비슷한듯 하지만 다르다. 한국 특유의 무엇인가가 보인다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해외 콜렉터들과 미술계 관계자들한테 많이 들었다. 한국 현대추상의 원류를 당시 화가들이 영향을 받은 서구 추상도 있지만, 민화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고 설명했다. 민화를 모티브로 작업하는 이돈아 작가의 작품(화조도 in Space)은 보다 직접적인 연결고리다. 갤러리측은 올해 가을 런던에서 열리는 프리즈아트페어에 현대작품과 더불어 민화와 고가구, 도자도 함께 출품할 예정이다.
▶장승업이 현대 동양화에 이르기까지=조선시대 마지막 천재화가로 불리는 장승업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이 공동 주최한 ‘조선 최후의 거장-장승업×취화선’전은 영화 취화선을 활용해 장승업이란 인물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촉구한다. 전시엔 장승업의 작품 29점, 조석진 18점, 안중식 10점을 비롯 디지털미디어 설치 작품 13점이 나왔다.
장승업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 실력 하나로 도화서에 특채 될 만큼 출중한 재능을 자랑했다. 산수, 인물, 화조, 사군자 등 장승업이 그려내지 못하는 화과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기암괴석 사이 세 노인이 대화하는 장면을 담은 ‘삼인문년’이다. 서로 자신의 나이가 더 많다고 자랑하는 세 노인곁에 반고와 상전벽해, 동방삭 등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은 “장승업은 당시 화가들처럼 중국 그림을 따라하긴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재조합, 재구성, 변형이 들어가 있다. 중국에 장승업의 그림과 같은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건 장승업의 화풍이 그 제자들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장승업과 심전, 소림의 그림을 나란히 비교해보면 스승의 영향이 대단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심전과 소림의 제자는 이상범과 노수현이다. 첨전 이상범은 조선의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홍익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심산 노수현은 독자적 산수화를 구축했고, 서울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역임했다. 장승업의 그림을 현대 동양화의 시조라고 하는 이유다.
탁 연구원은 “조선 절정기 못지않게 황혼기 마지막 화원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장승업의 작업은 현대 동양화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