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의현장에서] 망가져버린 거장 작품, 사후 처리는

언젠가는 망가진다. 미술품도 수명이 있다. 유화는 햇볕에 바래고, 종이는 자칫하면 곰팡이가 슨다. 미디어 작품은 기계의 수명이 다하면 더이상 송출이 불가하다. ‘복원’이 미술계 전문 영역인 이유다. 문제는 망가진 후 어떻게 할 것인가다.

상식적인 해결은 작가에 묻는 것이다. 작가가 고인이라면, 그의 법적 승계를 이어받은 유족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심플하다. 연초 관리 미비로 철거됐던 데니스 오펜하임의 유작 ‘꽃의 내부’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갑작스런 철거에 미술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해운대구청측은 재설치 입장을 밝혔다. 구청장이 오펜하임의 유족인 에이미 오펜하임 데니스 오펜하임 재단 책임자를 직접 미국에서 만나 사과하고, 재설치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다. 대신 장소는 원래 있던 바닷가가 아닌 APEC 나루공원 내부가 될 예정이다. 해운대구청측은 “시방서도 존재하는 등 재설치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족의 뜻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했다.

화재와 누전 등 안전문제로 가동이 중단된 백남준의 비디오 타워 설치작품 ‘다다익선’.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최근 가동중단이 밝혀진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이보다는 복잡하다. 지난 30년간 부품 교체 등 자잘한 수리도 계속 했고, 2003년에는 모니터 1003개를 전면 교체하기도 했다. 문제는 주요 부품 단종 됐다는 것이다. 수리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에 봉착했다. 대안은 두가지다. 브라운관 대신 요즘 사용하는 LCD 혹은 LED로 갈아끼우거나, 철거하고 오마주 작품을 설치하거나. 두가지 모두 반론이 만만치 않다. 평면 모니터를 사용할 경우 ‘다다익선’의 외형이 달라지고, 투사 화면 질감도 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철거할 경우 백남준 유산을 없앤다는 비판이 나온다. 백남준 작가가 생전에 이미지만 온전히 내보내도록 요즘 기술 써도 무방하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미술관으로서는 이를 덥썩 수용하기도 버겁기만하다. 앞으로 백남준 작품 수리의 전례로 남을 것이기에 좌고우면할 수 밖에 없다.

미술관쪽은 빠른 시일안에 결정을 내리긴 힘들다고 보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등 국내외 전문가를 비롯,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미국 스미스소니언미술관과 유족 등 관계자들의 의견을 1:1로 청취하는 한편 공청회나 토론을 통해 여론수렴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말 그대로 ‘하루 빨리보다 제대로’가 중요한 작업이다. 과정이 충실하다면 그 결과물로 만나는 ‘다다익선’도 충분히 관객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