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개막 강원국제비엔날레 ‘성황’ ‘惡의 사전’이라는 명징성 높은 주제에 신제현 ‘해피밀’·심승욱 ‘안정화된 불안…’ 지역작가 안배 배제…주제 집중도 높여 외신, 올해의 10대 비엔날레로 선정도
조건만 놓고 보면 암담하다. 제 1회 비엔날레다. 비엔날레를 개최할 건물이 없다. 총감독은 큐레이터보다 평론가로 유명하다. 예산도 광주비엔날레의 4분의 1정도에 불과한 23억원. 더구나 올해 국내에선 광주와 부산 등 주요 비엔날레들이 줄줄이 포진했다. 좋든 싫든 비교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결과는? 2월 3일 개막 이후 3월 1일까지 누적관객수가 13만1000명이다. 2016년 제 10회 부산국제비엔날레가 89일동안 32만명이 들렀다는 것을 감안하면 화려한 기록이다.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강원국제비엔날레 이야기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26일 비엔날레 폐막을 3주가량 앞두고 강원국제비엔날레 홍경한 총감독과 참여작가 심승욱, 신제현을 만났다.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여러면에서 일반적 국내 비엔날레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일단 일단 주제가 선명하다. 거시적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지 않고 ‘명징성’을 높였다. 주제를 향한 작품들의 집중도는 높아졌지만 동시에 작가 선택의 폭도 좁아졌다.
더구나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이라는 파격적 타이틀이 불러온 반감도 있었다. 실존된 생명의 가치, 약화하고 있는 삶의 질, 사회적 소외현상, 자본에 의해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는 사례 등 악으로부터 비롯된 사건과 상황들을 돌아봄으로써 본질적으로는 인간다움과 인간의 가치에 대해 묻겠다고 했지만, ‘비엔날레가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의 ‘문화올림픽’프로그램으로 열리는데, 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홍경한 총감독은 “개막 전날까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며 “주제부터 내부반발이 많았는데, 설득하거나 설명하거나 그게 안되면 정면돌파하거나였다. 키 역할을 했던건 올림픽과 주제의 결합이었다. 작품을 설치할 공간이 (아직)존재하지 않는데도 국내외 작가들의 참여를 끌어낸건 그 지점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전이 현재진행중인 시리아, 레바논, 모잠비크 작가도 참여했다. 모두 주제 하나만 보고 참여를 결정한 작가들이다. “시리아 압달라 오마리 작가는 내전중에도 참가했다. 5일 방문비자로 온 그를 돌려보내면서 살아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 총감독의 설명만으로도 올림픽 기간 악을 통해 ‘인본주의’를 현실적으로 다시 보아야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지역작가 안배도 없앴다. 같은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는 건 비엔날레에서 지역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역 흥행을 위해서기도 하다. 과감하게 주제집중도가 높은 작가들로 채웠다. 국내 인지도나 신인이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민, 성차별, 인종차별, 부의 불평등, 젠트리피케이션 등 사회성 짙은 작품이 대거 출품됐다.
그중에서도 심승욱과 신제현 작가 작품은 강원비엔날레 정점에 선 작품으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악(惡)에 대한 통찰에서 나아가그걸 체험하게 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맥락에 서있기 때문이다.
신제현은 난민들의 현실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식사로 비유한 ‘해피밀’(2018)을 선보였다. 작가는 강원비엔날레 참여 의뢰를 받고 ‘피난처’를 찾았다. 한국에 도착한 난민들이 난민지위를 얻기 위해 임시 거주하는 공간이다. “인터뷰한 사람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땅에 발 딛고 사는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그들이 고국을 떠나오기전 마지막으로 먹은 식사를 관객들과 함께 재현하며, 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체험으로 공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난민이 한국과 마냥 동떨어진 것만도 아니라고 했다. “이미 ‘헬조선’이라며 ‘탈조선’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고, 이렇게 한국을 떠난이들은 물론 ‘난민’은 아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자로 살아간다는건 난민의 그것과도 같다. 게다가 우리는 분단국가가 아닌가. 언제든 전쟁난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승욱은 국경없는 의사회 등 구호단체에서 수집한 이야기를 최수진 국립현대무용수와 함께 풀어냈다. ‘안정화된 불안-8개의 이야기’라는 작품은 8각 펜스에 빈곤, 전쟁, 환경문제 등을 영문 텍스트로 적시한다. 내레이션만으로도 심란한 사례들이지만 ‘감정전이’가 큰 춤은 이같은 감정의 진폭을 더 크게 만든다. “굿네이버스와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수집한 실화들을 바탕으로한 내레이션과 최수진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면서도 관객들은 무심하게 장면을 기록한다. 이 모습으로 작품이 완성된다”는 심승욱 작가는 “현대사회의 악은 우리의 무관심으로 커진다”고 지적했다.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올림픽 특수도 입었다. 관객중 상당수가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왔다가 들르기도 했다. 그러나 비엔날레가 국제적 맥락에서 해석되며 평가받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독일 공영방송 ZDF는 지난달 6일 전시장을 직접 찾아 양아치, 이해민선 작가의 작품을 집중 보도했고, 독일 주요 현대미술잡지 ‘쿤스트포름(KUNSTFORUM)’도 강원비엔날레를 집중 조명했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저명 미술잡지 ‘사라스바티(Sarasvati)’는 지난 1월 시드니비엔날레, 베니스건축비엔날레, 리버풀비엔날레와 더불어 올해 주목해야할 세계 10대 비엔날레로 강원국제비엔날레를 선정했고, 홍콩과 싱가포르의 명품잡지 태틀러(Hong Kong TatlerㆍSingapore Tatler)도 2월호 ‘여행할 가치가 있는 10대 비엔날레’ 기사 중 강원국제비엔날레를 첫 번째에 꼽았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