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관 관련 뉴스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영국 국립맨체스터 미술관이 성폭력ㆍ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Metooㆍ나도 그렇다)캠페인에 동참하는 뜻으로 19세기 영국화가 존 워터하우스의 대표작 ‘힐라스와 님프들’ 전시를 일시 중단했다는 뉴스였다.
맨체스터 미술관은 작품 철거 배경에 대해 ‘그림 속 여성들이 수동적인 장식품 또는 남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필자는 ‘힐라스와 님프들’ 원작을 본적이 있었지만 확인 차 워터하우스 화집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워터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미남 힐라스가 물의 요정들의 유혹에 빠져 연못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했다.
맨체스터 미술관 큐레이터가 지적한대로 그림 속 여성들은 전형적인 팜므 파탈이다. 빼어난 미모의 요정들은 모두 누드인데다 순진한 힐라스 왕자를 죽음을 상징하는 연못 속으로 유인하기 위해 추파를 던지거나 몸을 만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성 신체를 수동적인 장식품이나 팜므 파탈로 표현한 화가는 워터하우스 혼자만이 아니었다. 남성중심의 미술사에서 여성은 누드화를 그리는 주체가 아니라 단지 그려지는 대상에 불과했고, 이를 증명하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앙리 마티스 등 서양미술사를 수놓은 거장들의 누드화 속 여성들은 대부분 잠들거나 눈길을 피하고, 교태를 부리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또한 19세기말 많은 유럽예술가들이 아름다운 악녀인 팜므 파탈에 매료되어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요부들을 경쟁적으로 작품에 선보였다.
대표적인 화가로 구스타프 클림트, 에드바르트 뭉크, 구스타브 모로,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에드워드 번 존스 등을 꼽을 수 있다. 현재 미술사의 대가들이 그렸던 여성누드화는 서구유명미술관의 주요소장품으로 관객몰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 비춰볼 때 예술적 가치를 검증받은 미술관 누드화를 ‘미투‘ 표적으로 삼는 일은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게다가 예술 검열 논란과 미술관 관람문화에도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맨체스터 미술관은 “예술을 검열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리다 일주일 만에 ‘힐라스와 님프들’을 다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필자는 미술관에 걸린 누드화가 성의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일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명화 속 에로틱한 여성들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성적 환상을 대리 충족시켜주는 순 기능도 있다. 이는 프랑스 미술사학자이자 전시기획자 파스칼 보나푸가 ‘욕망이 그림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라고 말한 것에서도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