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메 피젬·백희성·위진복 깊은 대화
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 토파즈룸에서 진행된 헤럴드디자인포럼2017 ‘HERALD X DIGIT’ 행사에서는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까르메 피젬과 국내에서 백희성, 위진복 건축가가 강연과 대담을 진행했다. 국내 건축학도들을 육성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서 까르메 피젬은 ‘자연과 조화’, 백 건축가는 재료로서 ‘기억’, 위 건축가는 물성을 바꾸는 ‘아이디어’ 등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가장 먼저 연사로 나선 피젬은 스페인 ‘카탈루냐’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어디서 일하고 사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를 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자신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하기 전에 ‘바르베리’라 불리는 자신의 작업 공간을 보여줬다. 이어 “이곳은 RCR(피젬이 속한 공동회사)이 실제로 일하는 공간”이라며 “원래는 주조공장이었는데 자연, 공간과의 조화를 고려하며 작업실로 개조했다”고 말했다.
우거진 수풀 속에 만든 육상트랙을 소개하면서 피젬은 “이 공간은 단순히 ‘빨리 달리는’ 용도의 트랙이 아닌 달리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스포츠도 즐기면서 자연 속에서 운동하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와인을 보관하는 건물인 와이너리 ‘벨록’을 소개하면서 그녀는 건축 당시 설계에서부터 완공까지 현장에서 함께 했던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피젬은 벨록에 대해 “먼저 기존 장소에서 건물을 옮기지 않고 최대한 길을 연결해 건물까지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며 “프로젝트 시작 전부터 환경 속에 녹아 들어가자는 목적으로 진행해 토양과 햇빛 등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백 건축가는 건축 재료로서 ‘기억’을 강조하며 통념을 깨뜨리는 모습을 보였다. 백 건축가는 “건축재료 중에서 기억이라는 재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며 “사람들 각각에게 기억이 있듯이 도시에도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드는 건축물은 주로 기억을 단서로 시작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백 건축가는 프랑스 파리 시내 어느 대저택의 손잡이를 예를 들면서 “이 손잡이는 씨(C)자형으로 가운데 사람 얼굴이 들어가 있어 굉장히 문을 열기 힘들다”며 “프랑스 혁명 이후 의회 멤버의 저택으로, 자신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저택을 방문하는 사람은 손잡이를 잡으면서 필연적으로 자신의 엄지 손가락이 얼굴 형상의 이마에 닿기 때문에 거리감을 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백 건축가는 이를 “작은 손잡이에도 삶과 철학을 표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건축’으로 유명한 위 건축가는 자신에 대해 ‘물성을 아이디어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은 같은 의미로 쓴다”며 “예를 들면 디자인은 그저 죽어 있는 ‘나무’라는 물성에 아이디어를 불어넣어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 건축가는 자신이 완공했던 공공건축의 예시를 들며 디자인 철학을 전달했다. 그는 태풍으로 매년 수백채의 건물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고 있는 필리핀을 직접 방문해 정삼각형 철골을 붙여 ‘대피소’를 만든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재난 상황에서 건축가는 오히려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며 “제가 개입하기 전에 한 국제단체에서는 태풍에 대한 저항력만 고려해 건물을 붙여서 짓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단순히 저항력 뿐 아니라 환경과 사용하는 사람을 고려하고자 했다”며 “차라리 태풍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추구해 건물의 50%가 뚫려있는 상태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위 건축가는 이같은 공공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영국 유학을 통해 전혀 다른 시각을 배웠다”며 “국내 건축계는 외국에 비해 기존 관념이 쎈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디자이너는 물성 뿐 아니라 비물성까지 새로 구성할 수 있고, 구조에 대한 해석 덕분에 전체 물량이 바뀔 수도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오후 6시부터 신라호텔 영빈관에서는 디자인 명사들을 멘토로 개인 및 기업을 도약시킬 수 있는 디자인 프리미엄 토크가 열린다. 이 자리에는 클라우디오 벨리니와 백희성 건축가, 조지 포페스쿠와 성정기 제품디자이너가 함께 한다.
이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