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등 기존 환경과 연결해 메시지 지역성·일상성…자연과의 균형 중시 장소와의 소통…인간 위한 건축 지향 재료 단순화…사람과 공간 ‘교감’ 집중 방금 건너온 20세기를 우리는 ‘세계화’의 시대라 부른다.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은 모든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만큼 후폭풍도 거셌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철저히 관철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21세기는 20세기에서 얻은 교훈이 반영됐다. ‘세계화’ 대신 로컬, 지역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바로 이웃과 지역의 건강한 연결이 인간과 생태계가 사는 길이라는 성찰이 담긴 개념이다.
건축 디자인도 최근 화두는 지역성이다. 한 지역에서 30년 간 지내며 건축을 통해 자연과 지역, 문화의공존을 얘기하는 카르메 피젬이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2017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 자연스럽다. 스페인 여성 건축가 피젬은 RCR 아르끼떽또스의 공동대표로 동료인 라파엘 아란다(Rafael Aranda), 라몬 비랄타(Ramon Vilalta)와 함께 이 상을 공동으로 받았다. 3명의 공동 수상은 처음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올로트(Olot) 출신인 이들은 각자 이름의 첫 알파벳을 따서 지난 1988년 RCR을 설립했다.
다음달 7일 개최되는 ‘헤럴드디자인포럼2017’의 연사로 초청된 까메르 피젬과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의 건축 디자인 철학을 들어봤다.
피젬에게 건축은 “공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소통방식이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도시와 풍경, 건물 등 기존 환경과의 연결을 통해 드러난다. 그는 “이 연결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소위 음악계 거장들이 높낮이가 있는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듯 건축을 ‘예술’로 인식하는 것이다.
피젬의 디자인 철학은 지역성과 일상성으로 모아진다. 지난 30년 동안 몸담은 RCR이 만든 건축물은 그저 건물이 아니다. 건물이 자리한 장소와의 상호작용을 추구한다.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이를 확장해 지역의 지형과 전통, 문화를 받아들이고 계절별로 변하는 풍경과 그로 인해 지역사회에 미치는 문화적 변화까지 포섭해 담아낸다. RCR은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해 그들만의 건축 언어로 표현한다. 이같은 방식이 장소와의 진정한 ‘관계 맺기’이며, 이를 통해 건축물이 장소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장소와의 소통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건축을 지향하는 데 있다. 이는 그의 특징적인 재료의 단일성에서 발견된다. 재료를 단순화해 건물 내 사람들의 관심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고, 온전히 공간과 교감할 수 있게 만든다.
RCR의 사무실인 ‘바르베리 실험실(Barberi Laboratory)’은 오래된 공장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곳곳에 과거 흔적들을 그대로 포용했다. 여기에 유리와 플라스틱 등 현대적 재료는 꼭 필요한 부분에만 썼다.
지역성과 자연과의 균형에 집중하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세계화의 역행으로 보이지만 그는 지역성이본질적으로는 보편성과 통한다고 본다.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도 이를 뒷받침하듯 “장소에 어울리는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까지 하나의 건물에 담긴 완전함을 보여준다”며, 지역성을 뛰어넘는 영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공간을 다루는 건축가로서 다른 지역의 공간이 궁금할 법도 한데 피젬은 30년동안 카탈루냐를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단순하지만 묵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거기에서 살고, 또 일하고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디자인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피젬은 “일상생활의 방식을 이해하는 도구와 장비, 가구 등에 미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며 “제품은 그 자체로 트렌드를 이끄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피젬은 자신이 추구하는 궁극의 디자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시간을 초월하는 디자인, 시간이 지나도 공간과 예술의 질이 변치 않는 디자인이죠. 초기의 기능적 목적이 변하더라도 여전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이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