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좌파로 분류된 문화ㆍ예술인의 명단을 만들어 정부 지원에서 배제했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존재가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노동계 취업 배제 명단’, 결은 다르지만 ‘갑질 고객 명단’까지 블랙리스트의 역사는 뿌리깊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활용이 법적 처벌 대상이 되는 조건을 알아본다.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됐다. 이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타인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명단을 만든 것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고, 이를 활용하고 일선을 압박해야만 죄가 된다는 의미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 때문이 아니라 명단에 오른 예술인을 지원에서 배제하도록 한국 문화예술위원회ㆍ영화진흥위원회ㆍ출판진흥원 소속 임직원을 압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재판에서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는 건 만만찮다는 지적이 법조계 한 쪽에서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상급자가 명령한 것을 전달만 해준 것이라면 본인의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봐야하는지 논쟁 여지가 있다”며 “충분히 유무죄를 다툴 수 있다”고 했다.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 1978년도 동일방직 노조투쟁 당시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난 2010년 “중앙정보부 등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재취업을 봉쇄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4년에 이르는 재판 끝에 파기환송심인 서울고법은 지난 2014년 9월 국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활용한 데 대해 원고인 노동자 2명에게 각 5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고도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