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습자 가족들 14시간 밤샘 배편 못구한 일부 유가족 현장 접근 못하고 발동동 파도는 낮고 바람은 잠잠했다. 모든 것을 삼켰던 그 날, 그리고 그 이후 1073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영원같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이 순간 참아온 울음을 터뜨렸다. ▶관련기사 9면 그날을, 그 참사를 잊어버린 이도 많다. 심지어 비난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족들에게는 잊고 싶은 그날이 낙인처럼 뇌리에 생생히 박혀있다. 그런 아픔을 간직한 채 3년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날이 올 것을 믿어왔기 때문이리라. 1000일이 넘는 시간도 기다렸다. 하지만 인양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세월호의 녹슨 선체가 드러난 14시간은, 그 1000일보다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눈물로 지새운 밤이 며칠이었을까. 22일도 그런 날에 하루를 더했다.
맹골수도 앞에서 동생과 조카를 1073일동안 기다린 권오복(61) 씨는 해양수산부의 시험인양이 시작된 지난 22일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으로 왔다”며 “기상 여건도 좋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권 씨는 사고 현장이 눈 앞에 펼쳐지자 “재근아, 혁규야 조금만 참아. 미안하다”고 외쳤다.
권 씨와 함께 현장으로 향한 미수습자 가족들은 본 인양이 시작된 오후 8시50분부터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어두운 밤 현장에서 보이는 장면은 바지선과 크레인에서 나오는 불빛뿐이었다. 세월호 선체는 다음날인 23일 오전 3시45분께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정도까지 떠올랐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해수부에서 제공한 사진을 통해 선체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권 씨는 동이 트지 않은 오전 5시께에도 현장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아직 사고 해역이 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눈을 뗄 수는 없다”며 “동이 트고 배가 보일 때까지 인양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오전 6시30분께 날이 밝아오자 사고 해역에서 1㎞ 남짓 떨어진 어업지도선 위에서도 세월호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권 씨를 비롯해 인양 과정을 밤새 지켜본 미수습자 가족들은 그토록 보기 원했던 세월호의 모습에 탄식을 뱉었다. 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었고, 차마 지켜보지 못하고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피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강했다. 인양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해수부의 발표에 “이제는 인양 성공 확률이 100%”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현장에서 세월호 인양 과정을 살펴보는 동안, 팽목항에는 뒤늦게 도착한 일부 유가족들이 동거차도에 진입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2일 밤늦게 팽목항에 도착한 단원고 2학년 4반 임요한 군의 아버지 임온유(55ㆍ목사) 씨는 “전날 저녁 늦게 유족들로부터 인양 소식을 듣게 됐다”며 “이미 유족 버스는 출발한 뒤라 직접 차를 끌고 2시께 팽목항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팽목항까지 내려오며 파도가 잠잠하기를 계속 기도했다”며 “백방으로 배를 타고 가까이 갈 방법을 찾고 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임 씨처럼 배를 타지 못한 유가족들은 팽목항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일부는 기다리다 못해 해수부와 해경에 추가 배편을 문의하기도 했지만, 결국 배편을 구하지는 못했다. 임 씨는 “3년 동안 아무것도 못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배가 인양된다고 하니 오히려 허탈한 심정이다”라며 “섬에 도착한 다른 유가족과 통화하며 담담하게 상황을 지켜보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배를 타지 못해 안타깝다”고 호소했다. 결국 임 씨는 선체가 거의 인양된 오전 9시40분께 동거차도로 향하는 정기 여객선을 탈 수 있었다.
수면에서 13m, 해수부가 예고했던 인양 완료 시각인 오전 11시가 가까워졌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인양 일정은 다소 늦춰질 전망이다. 이철조 세월호인양추진단장은 “세월호 부양 과정에서 바지선 와이어와 세월호 사이에 간섭이 발생해 일정이 다소 늦춰졌다”며 “13m 인양 작업은 이르면 23일 오후 늦게 이뤄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진도=유오상·손지형·심우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