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아누워 있는 서너 달 동안/지은 시가 몇 편이던가/앓는 소리와 시 읊는 소리가/한데 뒤섞여 서로 이어지네…”
하늘 위 구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었던 백운거사 이규보(1168~1241)는 술병과 시병(詩病)으로 유명하다. 육체적 질병을 앓는 중에도 계속 술을 마셔댔고, 시 마귀가 들려 시를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다시 스스로 시벽을 서글퍼하며’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이쯤되면 시벽 정도가 아니라 시병이 틀림없다. 이규보는 체질이 약해 이런 저런 질병도 달고 살았다.실명할 정도로 안질을 심하게 앓기도 했고 피부병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의 열악한 의료수준에서 약을 구할 수도 적절한 치료법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규보는 시를 통해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자 고통의 근원을 찾아나선다.
“육체는 나무 인형 같다는 이치 분명히 알거늘/그 누가 얼굴 찌푸리고 끙끙 앓게 하는가(…)/생사는 한바탕 꿈이니 내가 무엇을 근심하랴/이처럼 모진 고통은 참으로 축하할 만하니/하늘이 피로한 삶을 불쌍히 여겨 쉬게 해 줌이라”(‘병중에 지어서 벗에게 보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펴낸 ‘병중사색’은 고려의 이규보와 이색, 조선 시대의 권근, 서거정, 김종직, 이식, 신흠 등 문인 7명이 병을 앓으며 사색한 내용을 담았다. 과거 지식인들은 질병에서도 긍정의 의미를 발견하려 애썼다. 의원을 통해 약을 지어 먹고 침을 맞던 정식 치료법 외에도 민간요법을 쓰거나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색은 치아가 심하게 손상돼 음식물을 씹을 수 없게 되자 연진법을 고안해냈다. 소화작용을 하는 침으로 음식을 삼키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마주하며 삶을 성찰하고 익살로 웃어넘기는 시편들에서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이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