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 거장’ 세지마 가즈요의 강연요약 “여러 사람들이 사적으로 사용하지만, 모두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원’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세지마 가즈요는 지난 30년간 자신의 작업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자연과 조화된 창조성 살린 건축 산책·식사·운동을 한곳서 즐기고 벽과 문이없는 개방적 공간 지향 루브르·뉴캐넌 프로젝트 좋은 예
세지마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16’에서 세번째 디자인비즈테크 세션 ‘건축디자인, 자연과 인간에서 답을 찾다’의 연사로 무대에 섰다. 그는 특유의 조용한 말투와 차분한 설명으로 청중들을 자신의 작품세계로 안내했다.
세지마는 니시자와 류에와 함께 ‘사나(SANAA)’라는 건축사무소를 꾸리고 있다. SANAA 건축사무소의 일관된 철학은 자연과 어울리는, 환경과 어울리는 건축이다. 지역적ㆍ사회적ㆍ역사적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창조성을 가미하는 것이 그들의 스타일이다.
첫번째로 소개한 프로젝트는 2009년 로잔연방공과대학 건물 프로젝트다. 이를 맡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세지마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로잔 프로젝트는 여러 의미로 독특하다.
높은 건물이 아닌 단층건물, 건물의 가운데 중정(中庭ㆍ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을 설계해 건물의 내외부를 연결시켰다. 지붕과 바닥면이 평행해 너울을 그리며 움직이면서 공간을 생성하는 구조다. 낮은 언덕 두 개가 맞닿은 듯한 이 건물의 콘크리트는 어떤 경우는 지붕이 되고 어떤 경우엔 바닥으로 활용된다. 시야를 가로막는 벽 대신 기둥으로 무게를 지탱하고, 문을 달아 내외부를 구분하는 대신 유리를 사용해 개방성을 최대한 높였다.
결국 이 건물은 다른 건물로 건너가는 통로역할을 함과 동시에 열린 내부를 가진 공간으로 거듭났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공부하고, 식사하고, 대화하며 공간을 채워나간다.
그는 루브르박물관 별관 프로젝트도 소개했다. 이 곳에서는 ‘자연과 어우러짐’을 고민했다. 파리에서 약 1시간 거리의 랑스(Lens)는 19세기까지 탄광으로 성장했던 마을이다. 별관을 짓기로 한 공간은 삼각형 모양의 대지로, 탄광에서 파내온 흙이 쌓여 낮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높낮이가 다른 대지를 평평하게 만들고 건물을 올리려면 적어도 4m 이상의 높이를 고르게 할 필요가 있었다.
세지마는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루브르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타임갤러리, 기획전시 갤러리, 보관창고, 다목적 공간 등 각각 구역을 지형에 따라 배치시키고 완만한 커브를 둬 연결했다”고 설명했다. 북유럽의 낮은 태양각도를 감안해 채광창을 달았고, 알루미늄벽을 활용해 주변 녹지와 태양의 색상이 그대로 반영되도록 했다.
그는 “사람들이 건물안에 들어가면, 커브진 모양을 바로 알아채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직각 박스에 비해서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며 “완만한 커브를 지은 것이 자연과 연결하는 데 성공적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번째로 일본 이누지마 섬마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과거 5000여명 정도 사람이 살았던 이 곳은 현재 주민 30~40명이 사는 마을로, 평균연령도 80세가 넘는다. 폐가로 변한 집을 갤러리로 전환시켰던 게 첫번째 단계였고, 이후 갤러리를 찾은 사람들이나 작가 등 방문객이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머무를 수 있는 공공 공간을 만드는 것이 두번째 단계였다. 그는 “폐가의 원자재를 최대한 활용하되, 새로운 자재도 이와 최대한 비슷한 것으로 활용해 마을의 전반적 맥락과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최근 작품은 작년에 완공한 미국 뉴캐넌 프로젝트였다. 사람들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공공 공간의 성격을 지닌 교회를 만들어 달라는 게 건축주의 요청이었다. 그는 자연과 소통, 목재를 활용한 건축물을 제안했고, 그의 바람대로 건축물은 자연 속에 안착했다. 세지마는 “주변환경에 잘 조화되길 바랐는데 이젠 건물이 환경의 일부로 자리잡았다”며 “건축 1년이 지난 지금은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산책, 식사, 농구를 하는 등 개방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세지마의 작품은 곡선형태, 두꺼운 벽이 없는 개방적 공간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나는 공간의 힘을 믿는다”며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하는 것이 공간의 힘이며 동시에 모인 사람들이 공간의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건축은 건축가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사용자와 소통하며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생물체인 셈이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