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연설 ‘Finally, Something Good’

미래의 부정적 예측은 뉴스 주기 단축 영향

‘낙관’ 강조…“민주주의·기대수명 등 향상”

세계적인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가 2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라운지(HERALD DESIGN LOUNGE) 2026’에서 ‘Finally, Something Good’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건축가, 크리에이터들의 인사이트를 소개하며 창의적인 디자인 담론을 이끌어 온 헤럴드디자인포럼이 올해부터 헤럴드디자인라운지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상섭 기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가 2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라운지(HERALD DESIGN LOUNGE) 2026’에서 ‘Finally, Something Good’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건축가, 크리에이터들의 인사이트를 소개하며 창의적인 디자인 담론을 이끌어 온 헤럴드디자인포럼이 올해부터 헤럴드디자인라운지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1825년 민주주의 국가는 단 한 곳이었습니다. 100년 뒤인 1925년에는 18곳, 2025년에는 85곳으로 늘었습니다. 세상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사그마이스터앤드월시(Sagmeister&Walsh) 공동설립자는 2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라운지(HERALD DESIGN LOUNGE) 2026’ 기조연설에서 ‘긍정의 힘’을 강조했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과 전쟁 등 현재의 사건을 보면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백 년 전이나 수십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인류가 이뤄낸 진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Finally, Something Good(마침내, 좋은 것)’이라는 주제로 연설에 나선 사그마이스터는 자신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미국 아카데미에서의 경험을 소개했다. 당시 한 변호사가 폴란드, 헝가리, 브라질 등에서 벌어지는 일을 거론하며 현대 민주주의가 종말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사그마이스터가 실제 데이터를 검색해 봤더니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현대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약 200년 전부터 현재까지 민주주의 국가 수가 점점 늘어난 것이다.

사그마이스터는 강연 초반 참석자들에게 인류의 미래와 개인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인류의 미래에는 비관적인 사람이 많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사람이 많았다.

그는 이를 ‘낙관주의 격차(Optimism Gap)’라고 설명했다. 세계와 인류의 미래는 비관적으로 보지만, 자신의 미래는 비교적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그마이스터는 사람들이 세상을 실제보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원인 중 하나로 갈수록 짧아지는 뉴스 주기를 꼽았다. 연간에서 월간, 주간, 일간으로 간행물 주기가 짧아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장 이후에는 순간으로 단축됐다.

“참사와 스캔들은 짧은 뉴스 주기에 잘 맞지만, 좋은 일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뇌는 위험을 빠르게 감지해야 했던 선사시대부터 부정적인 정보에 더 빠르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세상을 보다 긴 시계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삶과 죽음, 식량과 기아, 지식과 무지, 민주주의와 독재, 건강과 질병, 평화와 전쟁 등을 숫자로 살펴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가족사를 예로 들었다. 18~19세기를 살았던 그의 고조부모는 어린 자녀를 6명이나 잃었다. 정치적 권리도 제한됐다. 오스트리아에서는 1919년이 되서야 여성 참정권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는 195개국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있다.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라고 했다.

한국의 변화에도 놀라움을 표했다. 1990년대부터 약 10년 주기로 한국을 방문해 왔다는 사그마이스터는 “한국이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봤다. 그 어떤 국가도 이루지 못한 변혁을 달성했다”며 “한국의 기대수명은 지난 120년 동안 27세에서 83세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그의 대표 프로젝트 ‘Now is Better(지금이 더 낫다)’로 이어졌다. 기대수명, 빈곤, 불평등, 폭력 등의 데이터를 시각화해 인류의 삶이 장기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보여주는 시리즈 작업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렌티큘러 인쇄부터 에어 댄서(풍선인형)를 데이터 막대그래프로 활용한 DDP 야외 설치까지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5개의 병원에서 환자들이 수술받으러 지나가는 삭막한 복도에 밝은 디자인을 입혀 덜 불안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등 디자인을 통해 일상의 경험을 변화시키는 작업도 진행해 왔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시와 강연을 진행한 경험도 소개했다. 머리 위로 드론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만난 한 현지 관객은 그에게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그마이스터가 말하는 낙관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다는 뜻은 아니다. 디자이너는 부정적 소식을 포함해 사회 현상을 빠르게 쫓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는 청중의 질문에 그는 “둘 다 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부정적인 현실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부정적인 것만 보면 자포자기하게 된다. 지금은 부정적인 것은 너무 많고, 긍정적인 것은 너무 적다”며 “사회적 변화를 위해서는 채찍과 당근이 모두 필요하다. 언론이 끊임없이 채찍을 보여준다면 전시를 통해서는 당근도 보여주자는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에 대해선 물건을 주문할 때 사용한다면서도 “뭔가 소통을 하고자 하면 사람이 해야지 기계를 통해서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다. 디자인할 때도 사람이 사람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며 “시각적 작업의 주도적인 도구로는 쓰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그마이스터는 강연 마지막에 다시 참석자들에게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물었다. 강연 초반보다 미래를 낙관하는 쪽에 손을 든 사람이 조금 늘었다.

“Things will be great(상황은 좋아질 거예요).”

디자인 대가의 메시지는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세상을 바꿀 힘을 건넨다.

“사진이 없었다면 서도호의 집도 없었다”…AI시대의 디자인은? [헤럴드디자인라운지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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