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자연친화 설계’ 윤경식 건축가
IF디자인·세계건축상 25회 수상이력
“기술 발전할수록 질문능력 더 중요”
“인공지능(AI)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매우 빠르고 다양한 답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왜 만들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다음달 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라운지 2026’ 무대에 오르는 윤경식 건축가는 18일 헤럴드경제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AI 시대의 창작을 이같이 정리했다.
그는 “건축은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삶을 다루는 일”이라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건축가의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건축가는 35년 넘게 자연친화적 설계와 인문학적 사유를 결합해온 건축가이자 건축사상가다. iF 디자인 어워드, 국제건축상(IAA), 세계건축상(WA) 등 국제 건축상을 25회 이상 받았고 2023년 강릉 산불로 전소된 인월사를 재건한 작품으로 제53회 세계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번 라운지 주제 ‘비욘드 비주얼(Beyond Visuals)’을 “창의력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해석했다.
윤 건축가는 “작품은 보이고 만져지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인간의 동선은 보이지 않는다”며 “그 보이지 않는 영역, 작가가 어떤 생각 속에서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읽어내는 것이 문화”라고 말했다. 이어 “인문(人文)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고 그 무늬의 방향보다 한발 앞서가 보는 것이 창의성”이라며 “결국 모든 디자인의 해답은 인간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AI가 고품질 이미지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인간 디자이너에게 남는 능력을 묻자 그는 “‘나만의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물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오히려 지식”이라며 “지식과 학문은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답했다.
윤 건축가는 “비우고 또 비우면 무위에 이르고, 그때 오히려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라며 “지식의 축적과 분석, 정보에 기반한 제안을 이제 AI가 대신하는 만큼 우리는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쌓으려 애쓸 필요가 없는 시대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그 비워진 공간”이라며 “그 공간에 내가 들어가 당당히 설 때 상상력과 창의성이 살아 숨 쉬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자 도덕경의 ‘학문은 매일 하나씩 더하는 것이고 도(道)는 매일 하나씩 덜어내는 것’이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좋은 디자인’의 기준과 관련해 그는 국제 심사 경험을 근거로 답했다.
윤 건축가는 “세계적 건축상의 심사는 ‘예쁜 건축’이나 ‘멋진 디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디자인 뒤에 어떤 인문적 사유와 철학이 있는가를 본다”며 “인월사도 각 요소가 어떤 불교철학과 연결되는지를 상세히 설명했고, 여러 나라 심사위원들이 그 사유에 공감해줬다”고 말했다.
인월사 설계에서도 그의 선택은 기술적 효율이 아닌 철학이었다. 그는 “불이 나면 다시 타버릴 목조 건축의 과거를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길을 택했다”며 “복원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인월사라는 이름은 물에 비친 달을 뜻한다. 하나의 달이 수많은 물 위에 비치듯, 하나의 진리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세계다. 윤 건축가는 이 개념을 건축의 언어로 번역했다. 부처의 눈썹과 초승달의 곡선을 장식이 아닌 건물 전체의 형태로 확장한 것이다.
윤 건축가는 자신의 변화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30~40대에는 남다른 형태와 하이테크 기술에 온 힘을 쏟았고, 50~60대를 지나며 비로소 ‘사람이 주인인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그때부터 더 많은 상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젊은 창작자를 향한 조언도 같은 지점을 향했다. 윤 건축가는 “AI가 인간의 상상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방향으로 쓰인다면 매우 강력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며 “역설적으로 AI 시대가 될수록 인문학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현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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