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정 기술에 색깔을 입혀 분류하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수소는 그린(Green), 화석연료로 만든 수소는 그레이(Grey)라 부른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의약 분야는 레드바이오, 산업용 바이오기술은 화이트바이오라 한다. 복잡한 기술의 특성을 색깔 하나로 쉽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에도 색깔을 입혀보면 어떨까.
필자는 전기를 탄소배출 여부와 공급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기준으로 세 가지 색으로 나누어 볼 것을 제안한다. 석탄이나 천연가스처럼 탄소를 배출하지만 안정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브라운 전기(Brown Electricity)’, 원자력처럼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블루 전기(Blue Electricity)’, 태양광과 풍력처럼 탄소배출은 없지만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그린 전기(Green Electricity)’다. 여기서 색깔은 발전원의 이름표가 아니라 전기가 가진 특성과 그에 적합한 쓰임을 나타낸다.
중요한 것은 단지 색깔을 나누는 데 있지 않다. 서로 특성이 다른 전기를 과연 똑같은 용도로 사용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현재 전력망에서는 전기는 일단 망에 들어오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리적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기의 특성에 따라 사용처를 달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브라운 전기는 안정적 전력공급이라는 장점을 활용하되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CCU(탄소포집전환) 기술로 최대한 줄이고 활용해야 한다. 블루 전기는 대형 원전을 통해 국가 전력망의 안정적인 무탄소 전원 역할을 하는 한편, 향후 SMR(소형모듈원자로)을 데이터센터나 대규모 산업시설 인근에 설치하는 분산형 전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그린 전기다. 지금까지 우리는 태양광과 풍력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발전설비와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하고 송전망을 확충하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 하지만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하다 보니, 어떤 때는 전력이 부족할까 걱정하면서도 다른 때는 오히려 전기가 남아 발전을 줄이는 출력제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린 전기를 굳이 24시간 안정적인 전기로 만드는 데만 집중할 필요가 있을까. 전기가 생산될 때 그 전기를 직접 물질 생산에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태양 빛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그린수소를 만들고, 풍력발전을 이용해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전기화학적으로 전환해 연료나 화학제품(e-chemical)을 생산하는 식이다. 전기를 직접 저장하는 대신 저장과 운송이 가능한 ‘고부가 물질’로 바꾸는 셈이다.
이러한 공장을 재생에너지 생산지역 인근에 둔다면 장거리 송전망과 대규모 전력저장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특히 그린 전기를 CCU와 결합한다면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화석연료 발전의 탄소배출이라는 두 문제를 서로 연결해 해결하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린다. 즉 화력발전소를 기저전력 수단으로 유지하면서도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획기적인 방편이 될 수 있다. 브라운 전기의 안정성과 그린 전기의 청정성을 서로 보완하게 만드는 것이다.
탄소중립 시대의 전력정책은 어떤 발전원이 더 우월한지를 다투는 데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브라운, 블루, 그린 전기는 서로 경쟁하는 전기가 아니라 각자의 특성에 맞게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전기다. 모든 전기를 똑같이 만들 필요도, 똑같이 사용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전기의 색깔에 맞는 사용처를 고민할 때다.
민병권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연구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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