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실종된 이동훈, 2006년 6월 실종된 이윤희 씨 등 실종자 가족들이 제작한 성인 실종자 전단지의 모습. 김도윤 기자
2003년 3월 실종된 이동훈, 2006년 6월 실종된 이윤희 씨 등 실종자 가족들이 제작한 성인 실종자 전단지의 모습. 김도윤 기자

[헤럴드경제=정주원·김도윤 기자] “15년 내내 마음에 못이 박힌 것처럼 살았습니다. 살아서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알 수가 없어요.”

하덕희 씨의 아내는 2011년 집을 나선 뒤 15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어린이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아내는 새벽 근무를 위해 출근한 뒤 연락이 끊겼다. 당시 중학생이던 두 자녀는 성인이 됐고 함께 살던 어머니도 올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지금도 전국 사찰 등에 아내의 얼굴이 담긴 전단을 보내고 있다.

하씨는 당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직접 아내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이후 자신과 별다른 연고가 없는 경기 안산상록경찰서에서 사건을 담당했고 어느 순간 사건이 종결 처리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지난 6월 거주지인 둔촌동 관할서인 강동경찰서에 다시 실종 신고를 하고 DNA도 등록했다.

최근 실종 신고 후 결국 숨진 채로 발견된 제주 장미란(37) 씨 사건은 성인 실종 관리 체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담당 경찰관은 지난 5월 장씨와 연락해 안전을 확인했다며 신고 약 2시간 30분 만에 사건을 종결했지만 실제 통화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장씨는 실종 10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해당 경찰관은 또 다른 60대 남성 실종 사건도 비슷하게 허위 종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인 실종을 단순 가출로 보는 인식과 담당자 판단에 의존하는 관리 체계의 허술한 지점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출이니까 기다려라” 수십 년째 가족 찾는 사람들

성인 실종 사건에 대해 이처럼 초기에 ‘가출’로 판단하며 초동 대응에 한계를 보이는 현실의 문제 제기는 장기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반복됐다. 정미령 씨의 딸 조수민 씨는 17세이던 2002년 9월 13일 하교 후 사라졌다. 친구와 만나기로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받지 않았다. 가족은 곧바로 학교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다.

정씨는 이후 경찰서를 찾았을 때 “이건 가출이니까 기다려보라”, “집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경찰이 알려준 기지국을 토대로 가족이 직접 주변을 수색했고 이후 경찰 인력도 투입됐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정씨는 “가장 아쉬운 것은 초동수사”라고 콕 집어서 말했다. 실종 당시 17세였던 수민 씨는 살아 있다면 이제 40대 초반의 나이다. 가족은 지금도 매년 절절한 마음으로 수색에 나선다. 정씨는 “2010년 실종 전담반이 만들어졌지만 장기 실종 사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며 별도의 장기실종 전담체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2006년 실종된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 씨를 찾는다 전단지의 모습. [헤럴드경제 DB]
2006년 실종된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 씨를 찾는다 전단지의 모습. [헤럴드경제 DB]

2006년 전북대 수의학과 4학년이던 이윤희 씨 실종 사건도 20년째 미제로 남아 있다. 아버지 이동세 씨는 실종 직후 현장 보존과 컴퓨터 접속 기록 확인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초동 대응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성인이 스스로 가족과 연락을 끊은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전남대 4학년이던 전용희 씨가 집을 나간 뒤 가족과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사례가 그렇다. 당시 전씨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성인이고 본인이 부모를 만나지 않으려 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 전씨 아버지는 “나도 이제 80세가 넘었다.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죽고 싶다”고 호소했다.

스스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길 선택하거나 가정폭력 피해자처럼 소재가 노출돼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실종 초기 범죄나 사고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자발적인 가출로 판단해 버리면 수색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 실종 가족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성인 실종은 가정불화나 경제적 문제 등 여러 이유가 있어 모두 똑같이 볼 수는 없다”면서도 “초기에 경찰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면 단순 가출인지, 사건·사고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년 7만건 신고·1000명 안팎 사망…담당 인력은 부족

지난해 접수된 18세 이상 성인 실종 신고는 7만814건으로, 성인 실종은 해마다 약 7만건씩 반복되고 있다. 숨진 채 발견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28일 경찰청의 ‘실종성인(가출인) 사망 발견 현황’에 따르면 2024년 1112명, 지난해 931명이 사망 상태로 발견됐다. 올해도 7월까지 벌써 478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가운데 범죄사망은 각각 3명, 3명, 1명이었다.

범죄로 인한 사망은 소수지만, 실종 이후 사고·극단적 선택·건강 이상 등으로 숨지거나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미제 사건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신고 초기부터 위험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회장은 제주 장미란 씨 사건을 두고 “예견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 회장은 “형사나 수사 분야는 한 분야에서 오래 근무하며 전문성을 쌓는데 실종 담당자는 순환보직으로 이곳저곳 옮겨 다닌다”며 “전문성이 쌓이기 어려운 데다 한두 명이 수십 건을 처리할 정도로 업무량도 많다”고 지적했다.

지난 27일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회장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윤 기자
지난 27일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회장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윤 기자

서 대표도 실종 업무가 조직 개편 때마다 여러 부서로 옮겨 다니면서 전문성이 축적되기 어려웠다고 봤다. 서 대표는 “여성청소년과에 실종 수사팀을 만들어도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 업무가 많아지면 실종은 뒤로 밀렸다”며 “이후 강력수사대, 형사기동대 등으로 업무가 계속 옮겨갔다”고 말했다. 이어 “일선에 담당자가 4~6명 있어도 교대근무를 하면 실제 한 번에 일하는 인원은 적다”며 인력 확충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기 실종자 가족들은 실제 사건이 별다른 설명 없이 종결되는 경험도 많다고 주장한다. 15년째 아내를 찾고 있는 하덕희 씨는 아내 사건이 과거 안산상록경찰서에서 종결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하씨는 “종결 처리를 하려면 분명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종결됐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제주 사건을 보면서 실종 사건을 처리하는 체계가 얼마나 꼼꼼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실제 제주 사건에서는 실종 사건 종결 과정의 관리·감독 문제도 드러났다. 기존에도 담당자가 사건 처리 결과를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절차는 있었지만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 사건을 해제할 때 관리자가 다시 확인 및 승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경찰은 사건 이후 실종 해제 시 관리자 승인을 거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개선 전까지는 형사과장이 처리 결과를 서면으로 확인하도록 바꿨다.

성인 실종법 4건 계류…“법으로는 부족”

현장 인력과 관리 절차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도 과제로 꼽힌다. 일반 성인 실종을 별도로 규율하는 법률은 아직 없다. 현행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18세 미만 아동과 일부 장애인, 치매환자 등을 대상으로 해 일반 성인은 별도의 법적 보호 체계에서 빠져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2대 국회에는 임호선·허성무·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 등이 성인 실종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마다 차이는 있지만 실종 성인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실종자의 위치·이동경로 정보 수집이나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 4일 제주시 한림읍에서 수개월 전 실종됐던 장미란 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연합]
지난 4일 제주시 한림읍에서 수개월 전 실종됐던 장미란 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연합]

장미란 씨 사건을 계기로 멈춰 있던 입법 논의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성인 실종법 부재라는 오랜 입법 과제의 필요성이 재조명됐다”며 신고 접수부터 수색·수사, 사건 종결까지 전 과정을 살피고 경찰·지자체·행정안전부 간 정보공유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양부남 의원실 관계자도 “오는 9월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성인 실종법안이 다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을 지원해 온 단체들도 입법과 함께 인력·예산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성인 실종을 다루는 별도 법률이 없다”며 “법을 만드는 것과 함께 실제 현장에서 움직일 인력과 예산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주봉 회장도 관련 법안의 조속한 심사와 처리를 촉구했다.

제주에서 실종된 장미란(37) 씨의 모습. [실종자 가족 제공]
제주에서 실종된 장미란(37) 씨의 모습. [실종자 가족 제공]

다만 법 제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법률에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면 경찰관에게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생기는 것은 맞다”면서도 “법을 만든다고 곧바로 현장 대응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입법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성인 실종은 가정불화나 채무 문제 등 원인이 다양하고 모든 사건을 같은 수준으로 확인하려면 상당한 인력이 필요하다”며 “법과 지침뿐 아니라 일선 경찰관에 대한 교육과 전문 인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규모 경찰서는 별도 전담인력을 두기 어려운 만큼 광역·권역 단위로 전문 인력을 구성해 여러 경찰서의 실종 사건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장기 실종자 가족들은 지속적인 사건 관리도 요구하고 있다. 24년째 딸을 찾고 있는 정미령 씨는 “장기 실종을 전담하는 사람들이 있어 1년에 한 건이라도 해결한다면 그것도 큰일”이라고 말했다. 하덕희 씨도 “경찰뿐 아니라 지자체와 여러 기관이 함께 연계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