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내 삶보다 아이들을 위한 삶이 우선되는 게 부모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키워왔지만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정말 못 버텼을 것 같아요.”
두 아이를 10년 넘게 홀로 키워온 40대 김호중(가명) 씨. 그는 둘째가 네 살이던 때부터 사실상 홀로 양육을 책임져 왔다. 21살의 어린 나이에 첫 아이를 얻은 김씨는 아이가 아프거나 학교에서 연락이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가야 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자녀 양육 등을 위해 자영업을 시작했고, 코로나19 시기부터 장사가 어려워지자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 두 아이를 책임져 왔다.
김씨는 “사업이 어려워진 시기에 전처에게 고3이던 딸의 학원비 중 40만원만이라도 보태달라고 부탁했지만 외면당했고 대학 진학 후 기숙사비 등으로 부담이 커져 다시 도움을 요청했을 때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며 “금액이 크지는 않더라도 선지급을 받게 되면 전처도 더 이상 양육비 지급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헤어진 배우자와의 관계는 끝나도 부모의 책임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처럼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모 간 갈등 등을 이유로 양육비 지급을 미루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한부모가구는 약 148만 가구에 달한다.
2024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혼이거나 이혼한 한부모 10명 중 7명 이상(71.3%)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비와 식비 등 가족 공통지출을 제외한 자녀 1명당 월평균 양육비 지출은 58만2500원으로 조사됐다. 자녀 연령별로는 미취학 46만1000원, 초등학생 50만5000원, 중·고등학생 66만1000원으로 자녀가 성장할수록 부담도 커진다.
지난 26일 오후 헤럴드경제가 찾은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 24층 양육비이행관리원에는 이처럼 받지 못한 양육비를 대신 받아내기 위한 법적 절차를 돕기 위해 119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행관리원은 양육비를 받지 못한 양육 부모를 위해 양육비 청구·증액 등 양육비 채권을 확보하는 소송부터 채권압류·추심, 강제경매, 이행명령 등 실제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한 법적 절차를 지원한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이행관리원이 지원한 소송만 6800건이 넘는다.
이날 만난 이태영 양육비이행관리원 소속 소송지원 변호사는 “이행관리원을 찾는 양육 부모들은 이혼이나 결별 과정에서 이미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은 경우가 많다”며 “재판을 거쳐 양육비 지급이 결정된 뒤에도 상대방이 이를 지급하지 않아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상태에서 찾아온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재산도 충분한 전문직이나 사업가 중에서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면허정지·출국금지·명단공개…그래도 이행률 절반
양육비를 법적으로 받아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양육비 재판은 통상 1심 판단까지 6개월에서 1년가량 소요된다. 기존에 정해진 양육비를 올려달라는 증액 청구 역시 자녀가 성장했거나 물가가 올랐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양육 부모의 실직이나 자녀의 장애 진단 등 소득과 양육비용에 구체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법원의 판단이 나온 뒤에도 양육비 지급이 곧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행관리원이 판결 이후 채권압류·추심, 강제경매 등 실제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한 절차까지 지원하는 이유다.
이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7년간 양육비를 받지 못하다 이행관리원의 지원으로 밀린 양육비 전액을 받아낸 사례를 꼽았다.
그는 “두 자녀를 홀로 키우던 어머니였는데 7년간 양육비를 받지 못하다 두 자녀가 모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양육 부담이 커지자 이행관리원에 도움을 요청했다”며 “채무자의 주소지와 근무지를 확인한 뒤 이행청구에 나섰고 채권압류, 추심명령과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절차까지 밟자 결국 채무자가 밀린 양육비 6120만원을 전액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절반가량은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제재 강화와 관련해 정부는 2021년 운전면허 정지와 출국금지, 명단공개를 도입한 데 이어 2024년 9월에는 감치명령을 거치지 않고 법원의 이행 명령만으로도 제재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했다. 지난해 7월에는 명단공개 전 의견진술 기간도 3개월 이상에서 10일 이상으로 단축했다.
이에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제재 의결은 2024년 947건에서 지난해 1389건으로 늘었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720건의 제재가 의결됐다.
다만 제재 강화에도 양육비 이행률은 지난 6월 기준 49.9%로 여전히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선지급제 월 20만원…“숨통 트이지만 현실화 필요”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한 지리한 법적 절차를 밟는 동안 당장의 금전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제도가 ‘양육비 선지급제’다. 지난해 7월 도입된 선지급제는 비양육 부모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국가가 미성년 자녀 1명당 월 20만원을 먼저 지급한 뒤 채무자에게 회수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양육비 채권자가 속한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150% 이하인 경우만 지원받을 수 있지만 오는 10월 29일부터는 소득 기준이 폐지된다.
지난 5월까지 6923가구의 미성년 자녀 1만917명에게 총 167억3000만원이 선지급됐다.
김씨도 현재 미성년 자녀에 대한 선지급금을 받고 있다. 다만 그는 월 20만원으로는 양육비 부담을 덜기에 충분하지는 않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월 20만원을 받는다고 삶에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행관리원이 조금이라도 지원해 주니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다만 “자녀 나이에 따라 지원 금액을 현실화하고 제도를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음에도 고의로 이를 외면하는 ‘나쁜 부모’에 대해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제도개선에 나선다.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형사처벌을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인 법정형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높이고 감치명령 이후 형사처벌까지의 유예기간도 1년에서 6개월로 줄이는 방안이다.
이 변호사는 “일반적인 민사사건이 성인 간 단순한 재산상 채권, 채무를 다룬다면 양육비 사건은 미성년 자녀의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다르다”며 “양육비는 부모 간 감정적 대립이나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 한 아이의 온전한 성장을 지켜내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필수적인 보호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