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학·물리 올림피아드 수상 학생 6명 인터뷰

“혼자 풀 땐 포기하고 싶었지만 같이 하면 재미”

대표 탈락·은메달엔 눈물…이들도 불안·좌절 겪어

게임·쇼츠 즐기는 10대…“성적 좋다고 의대 안 가”

AI 시대 수학·물리 선택…“의미 있는 질문 찾겠다”

올림피아드 수상자 정민권(왼쪽부터), 김무연, 이권훤, 이현준, 홍승욱, 김동현 학생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올림피아드 수상자 정민권(왼쪽부터), 김무연, 이권훤, 이현준, 홍승욱, 김동현 학생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정주원 기자] “처음에는 ‘재능의 벽’을 느낄 정도로 잘하는 친구를 보고 경쟁심도 들고 부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같이 문제를 풀고 친해지고 나니 경계심보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더 커졌습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은메달 수상자인 서울과학고 김동현(17) 군은 자신보다 뛰어난 친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수학·물리올림피아드에서 메달을 딴 서울과고 6인방 중 한 명인 그는 천부적인 ‘머리’를 타고났지만 ‘재능의 벽’ 앞에선 좌절도 맛봤다고 한다. 그 벽의 종류와 높이가 평범한 이들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지난 24일 동현 군을 비롯한 6명의 서울과학고 영재 소년들을 만났다. 친구들과 모이니 그저 신난 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앞다퉈 쏟아냈다. 하루 종일 수학 문제와 씨름하며 보낸 방학, 올림피아드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않아 좌절했던 일. 자신보다 문제를 빨리 푸는 친구를 보며 조바심을 냈고 시험 결과가 기대만큼이 아니어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러다가도 시험만 끝나면 지웠던 게임을 부리나케 다시 손에 쥐고, 쇼츠 영상에 폭 빠지는 여느 소년들과 같았다.

그럼에도 그들을 가장 들뜨게 하는 건 수학, 물리 문제 하나를 두고 씨름하다가 끝내 답을 찾는 것. “좋아하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6명의 친구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이다.

영재 소년들의 공부법

올림피아드 수상자 정민권(왼쪽부터), 김무연, 이권훤, 이현준, 홍승욱, 김동현 학생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올림피아드 수상자 정민권(왼쪽부터), 김무연, 이권훤, 이현준, 홍승욱, 김동현 학생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들의 공부법의 핵심은 ‘몰입’이다. 그저 오래 앉아있기보다 내가 뭘 모르는지 인지하고, 한 문제를 잘 풀 방법을 끝까지 고민한다.

수학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 이현준(18) 학생은 지난 겨울방학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수학 문제만 풀면서’ 보냈다고 한다. 학기 중에는 수행평가나 내신 준비 때문에 올림피아드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시간이 나면 어려운 문제를 찾아 계속 풀었다.

잠을 줄여가면서 공부한 건 아니다. 이군은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중요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더 잘 풀 수 있을지, 지금 하는 걸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를 많이 생각하며 했다”고 말했다.

홍승욱(17) 학생도 내신과 올림피아드를 동시에 준비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 그 부분에 시간을 더 쓰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물리 학생들의 공부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했다. 김무연(19)·이권현(19)·정민권(18) 학생은 학교 물리 수업을 통해 기본 개념을 익힌 뒤 국제올림피아드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며 실전 감각을 키웠다.

더불어 공부하는 시간도 이들에겐 소중했다. 따로 또 같이. 올림피아드에서 수상 학생들은 ‘수학문제연구부’라는 자율 활동을 하며 각자 만든 문제를 공유하고 실제 대회처럼 4시간30분 동안 세 문제를 푸는 모의고사도 치렀다. 물리 학생들은 대회를 앞두고 기숙사 방에 모여 기출문제를 풀고 풀이를 비교했다.

김동현 학생은 혼자 공부하던 시절과 가장 달라진 점으로 친구를 꼽았다. “혼자 공부할 때는 문제가 조금만 안 풀려도 포기하고 놀고 싶었는데 같이 풀면 그것 자체로 재미있었다”고 했다.

일부 학생은 내신이나 올림피아드 입문을 위해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학원에서 정답을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친구들과 풀이를 주고받는 시간이 중요해졌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또래 환경이 올림피아드 준비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대입에 직접 반영되지 않는 올림피아드를 내신·수능과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 일반고에서는 같은 환경을 만들기 쉽지 않다고 봤다. 홍승욱 군은 “학교 밖에서도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만나 문제를 공유하고 토론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4일 서울 용산구 서울시교육청에서 2026 국제 수학·물리·생물 올림피아드 수상 학생들을 초청해 격려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4일 서울 용산구 서울시교육청에서 2026 국제 수학·물리·생물 올림피아드 수상 학생들을 초청해 격려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좌절의 경험, 소년을 키웠다

이번 국제올림피아드에서는 국가대표로 참가한 우리나라 학생 13명이 모두 수상했다. 수학에서는 금메달 3·은메달 2·장려상 1개 ▷물리 금메달 5개(전원) ▷생물 금메달 2개(전원)를 받았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영재로 불리는 이들에게도 메달을 향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표 선발에서 탈락하거나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고, 자신보다 뛰어난 친구 앞에서 작아질 때도 있었다.

이권현 학생은 지난해 아시아물리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세계적인 대회의 은메달이었지만 국제대회 출전을 노렸던 학생에게는 아쉬운 결과였다. 이군은 “대한민국 대표로 나갔는데 은메달을 받은 게 자존심 상해 울었다”고 말했다.

다시 1년을 절치부심해 국제올림피아드에 나서게 됐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수두에 걸렸다. 참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했지만 별도의 격리 공간에서 시험을 치렀고 결국 금메달을 따냈다.

김무연 학생은 첫 국가대표 도전에서 면접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다음에는 면접 대상자가 될 수 있고 대표도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준비해 이번에 쾌거를 얻었다.

[국제올림피아드]

국제 올림피아드는 중·고등학교 과정의 전 세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최되는 수학·물리·정보·화학·생물 등 주제의 국제 학술경시대회다. 통상 국내 올림피아드 선발 과정을 통해 국가대표 4~6명을 뽑아 한 팀으로 출전 시킨다. 종목별로 이론·문제풀이뿐 아니라 실험·실기 평가 등이 함께 이뤄지기도 한다.

정민권 학생은 함께 준비하던 선배들이 자신보다 문제를 훨씬 빨리 푸는 모습을 보며 “상위 5명 안에 못 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에 시달렸다. 국제대회에서도 실험 시험을 기대만큼 보지 못해 금메달을 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결과가 발표됐을 때 첫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수학에서도 실패는 반복됐다. 홍승욱 학생은 국가대표 후보 선발시험에서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함수 문제를 잘못 풀어 후보에 들지 못했다. 그는 “그때는 많이 아쉬웠지만 다음에는 방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동현 학생은 대표 선발 과정에서 느꼈던 불안이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고 한다. “목표한 결과가 안 나오면 당연히 속상하죠. 그래도 수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재미나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피아드 수상자 정민권(왼쪽부터), 김무연, 이권훤, 이현준, 홍승욱, 김동현 학생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올림피아드 수상자 정민권(왼쪽부터), 김무연, 이권훤, 이현준, 홍승욱, 김동현 학생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의대? 갈 수 있어도 안 가요

책을 덮은 뒤 모습은 놀기 좋아하고 늘 어울리려는 10대 또래들과 다르지 않았다. 게임을 하고, 잠이 부족해 틈만 나면 자고 쇼츠를 한번 보기 시작했다가 공부할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김무연 학생은 올림피아드 대회를 마치자마자 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설치했다. 정민권 학생은 ‘마인크래프트’와 생존게임 ‘굶지마’를 즐겼고 중학생 때부터 체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스마트폰의 유혹에서도 자유롭지 않았다. 이현준 학생은 쇼츠나 릴스를 한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보게 된다며 중요한 대회를 준비할 때는 SNS 접속을 막아주는 앱을 이용했다고 했다. “아직도 (유혹을 뿌리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정민권 학생은 몽골 대표 학생과 호텔 로비에서 체스를 뒀고 한국 학생들과 함께 고스톱도 쳤다. 이권현 학생은 코스타리카 대표들과 파티에서 살사를 추며 친해졌다. 수학 학생들도 시험이 없는 날에는 각국 대표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문화체험을 하며 어울렸다.

고교를 졸업한 이후의 이들의 진로가 궁금했다. 저마다 품은 구상은 달랐지만, 의대 진학에는 다들 선을 그었다. 수학과 물리 공부를 토대로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무연 학생은 “갈 수 있어도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어차피 일을 해야 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대나 KAIST 물리학과에 진학해 양자컴퓨터 등을 연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교 최상위권인 정민권 학생은 전기정보공학 분야에서 공부할 생각이다. 그는 “내신을 열심히 한 이유는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것인데 성적이 아깝다고 의대를 가면 오히려 선택지를 줄이는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권현 학생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과 진학과 미국 유학 등을 생각하고 있다. 어린 시절 파킨슨병을 앓던 친구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기술의 의미를 처음 실감한 그는 “기술이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해줄 수 있구나”라면서 사람의 삶과 존엄성을 지키는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언급했다.

올림피아드 수상자 정민권(왼쪽부터), 김무연, 이권훤, 이현준, 홍승욱, 김동현 학생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올림피아드 수상자 정민권(왼쪽부터), 김무연, 이권훤, 이현준, 홍승욱, 김동현 학생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영재들이 그리는 미래

올림피아드 수상 학생들은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남아 있다고 봤다.

이현준 학생은 AI가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게 되더라도 인간 수학자의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수학자는 문제를 푸는 것뿐 아니라 무엇을 풀어야 하는지 문제를 만들고, 어떤 문제가 의미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도 합니다.”

AI가 문제 풀이의 상당 부분을 맡게 되더라도 새로운 질문을 만들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찾아내는 과정에서는 인간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학생은 앞으로 인간과 AI가 서로의 강점을 활용해 함께 수학을 연구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민권 학생에게 과학자로서 평생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자 ‘모든 것의 이론’을 해결하고 싶다고 꼽았다. 모든 것의 이론은 중력과 전자기력 등 자연을 지배하는 네 가지 힘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현대 물리학의 오랜 난제다.

다만 그 역시 늘 물리가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 내신을 준비하며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반복해서 풀다 보니 한때는 입학 당시만큼 물리가 재미있지 않게 느껴졌다고 했다. 올림피아드가 끝난 뒤 성적과 선발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이 원하는 물리를 다시 공부하면서 재미를 되찾았다.

이들은 공부법도, 꿈도, 앞으로 풀고 싶은 문제도 달랐다. 하지만 실패 뒤 다시 문제를 펼친 이유를 묻자 답은 결국 비슷한 곳으로 모였다. 성적이나 메달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수학과 물리가 재미있다는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