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만 탓한다고 하기도 어려운 건 사실이다. 모든 지표는 최악을 갱신하는 중이다. 생산, 수출, 내수판매, 고용 하나 같이 어렵다. 영업활동 유지만 해도 칭찬해야 할 판이다. 관세전쟁, 교역위축, 불황 등 환경 탓이 크긴 하다.

이런 예측불허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예측가능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숙명을 갖는다. 확장된 관계성으로 인해 내재되는 공익성 때문이다. 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유한책임성을 초월해 주어지는 성질을 갖는다. 기업활동은 투자자·채권자·고객·임직원·협력사와 같은 이해관계자 집단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영향력이 확장되기에.

이처럼 공익적 역할을 하는 데도 대접받지는 못한다. 한국의 정치·사회 환경은 어느 나라보다도 기업에 비우호적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왔다. 기업자본주의 혜택은 누릴대로 누리면서도 기업활동에 대해선 냉소적이다.

그게 양심적 태도인줄 알았을까? 이 인지부조화와 이중성은 반기업주의로 눈길을 뻗었다. 어느덧 ‘반기업 정서=양심’이란 돌파구를 찾았다. 이는 이윤추구란 기업의 원초적 동력을 약화시킨다. 장려돼야 할 창업·투자·성장·인수합병도 이 틀안에 갖혀버린다. 우리 스스로 발밑을 허물고 있다.

기업들 잘못도 있다. 소수주주 대접, 배당성향, 투명성, 사회적 책임 등에서 미흡한 구석이 적지 않다. 상법에 우선하는 사적 자치를 즐기기도 했다. 그 결과, 선악의 프레임에 빨려들었다. 인지부조화자들의 먹잇감이 된 것.

기업들은 헌재 복지부동, 불음불식, 장기동면 상태다. 영업활동은 뒷전인 채 재무장부만 뒤적이고 있다. 환경이 그리 만들었긴 하지만 내부의 동력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들을 한다.

중요한 것은 탄력성이다. 탄력성이란 외부의 변동에 대응하는 능력 쯤 된다. 그 중에서도 회복탄력성이 핵심이다.

동물의 동면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려는 선택이다. 린번(최소 연소) 상태가 생존에 유리하다. 급변기에 유용한 전략이지만 회복탄력성을 떨어뜨린다. 겨울잠에서 깬 동물이 쉬운 먹잇감인 것처럼.

이제 효율적 자원배분은 거의 기업들의 몫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공익성도 이 역할과 관련이 깊다. 기업이 못하는 부분이 정부 책임으로 남는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기획도 계획도 못하겠다고들 한다. 깨어나기, 상상하기라도 해보자. 탄력성 회복의 출발이다.

그 다음 아이디어를 모으고 기획을 해도 된다. 회복탄력성을 잃으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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