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당스님, ‘만암 평전’ 출간회서 쓴소리
“‘수행 불교’가 ‘주지 불교’로 퇴색”
종단 내 권력 경쟁의 병폐를 고쳐야
![24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열린 ‘만암 평전’ 출간 기자간담회에 (왼쪽부터) 김택근 작가, 조계종 제18교구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단장 겸 불갑사 주지 만당스님이 참석하고 있다. [조계종출판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25/news-p.v1.20250425.3b8f15fe9a67454eb9199b67729eb4f6_P1.jpg)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현재 한국 불교가 수행 공동체로서의 본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단장이자 불갑사 주지인 만당스님은 24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열린 ‘만암 평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옛날 수행 공동체로서 화합하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주지 불교로 바뀌어 버렸다”며 “눈에 보이지 않게 종권을 지향하는 알력들이 존재하고, 각 단체 간에 여러 이권을 주장해 갈등과 대립을 촉발한다. 수행 불교로서 모습이 많이 옅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조계종 제18교구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도 “지금은 누구나 주지를 하려 한다. 우리는 월급 받는 성직자가 아니고 수행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수행자가 성직자로 전환돼 버렸다”며 “불교가 원래 목적을 상실해 버리고 방황하는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 만암 대종사(1876~1957)의 삶은 불교의 초심을 되돌아보게 한다. 김택근 작가의 ‘만암 평전’(조계종출판사)은 일제강점기 훼손된 조선 불교를 치유하고, 지역 공동체를 위한 복지와 교육에 매진한 만암 스님의 삶을 담았다.
만암스님은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었다고 해서 다 중이 아니다”, “중이 되기 전에는 부처를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승려의 기본은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의 권력 탐하지 않고,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태도를 중심에 뒀다.
그는 ‘인재 불사가 곧 항일’이라는 믿음 아래 교육의 기반을 다졌다. 1909년께 승려들의 현대적 교육기관인 광성의숙을 세우고, 1928년엔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불교전수학교 교장으로 취임했으며 1946년 광주에 정광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1947년 고불총림을 설립하고, 1954년 조계종 초대 종정에 추대된 만암스님은 아흔이 넘어서도 밭일을 하며 지역민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가난한 ‘자비 보살’의 삶을 살았다.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으로 있던 6·25 전쟁 당시엔 목숨을 걸고 백양사 대웅전이 불타지 않도록 지켰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처승은 사찰에서 나가라’는 취지로 내놓은 정화 유시로 촉발된 불교정화운동 때는 불교 내부의 분열과 대립을 넘어서려 애썼다.
만암스님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늘어난 대처승을 곧바로 내쫓지 않고 절을 지키는 호법승의 역할을 부여하되 상좌(제자)를 두지 못하게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대처승이 사라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암스님의 소망처럼 화합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비구승과 대처승의 갈등은 폭력 사태로 번지면서 결국 한국 불교가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으로 쪼개지는 결과를 낳았다.
양 종단은 선암사의 소유권을 두고 오랜 기간 법정 다툼을 벌인 바 있다. 법원은 태고종의 손을 들어줬지만 조계종은 이에 승복하지 않고 재심을 신청했다가 각하 당하기도 했다.
무공스님은 교구장이 아닌 개인 의견을 전제로 “조계(종)와 태고(종)라는 싸움으로 선암사를 두고 수십 년간 분쟁하면서 왜 이렇게 양보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로 좋게 지내면 될 텐데 끝없이 다투는 부분이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김택근 작가는 “불교는 가난한 사람을 보듬어야 한다”면서 “한국 불교는 권승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만당스님과 무공스님은 종단 내 권력 경쟁의 병폐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만당스님은 “선거 제도가 본래 취지와 멀어져 수행 도량의 기풍을 해치고 있다”며 “대중들이 화합해서 사찰을 이끌 스님을 모시는 게 아니고 자리 임명권을 가지고 무리하게 경쟁하다 보니 1994년 종단 (분규) 사태가 생겼고 종헌·종법을 개정해 (현재의) 선거 제도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0년이 지나면서 폐단이 노출됐다”며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지만, 선거제도의 병폐는 조만간 반드시 고쳐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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