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화 기자] 폭염이 계속되고 있지만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을 우려해 에어컨을 제대로 틀지 못하는 가정이 여전히 많다. 정부는 부자 감세 가능성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에 반대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은 사실이 오래 전에 확인된 것으로 나타났다.
헤럴드경제가 입수한 2013년 6월 국회예산정책처 공공기관평가과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2012년 최저생계비 미만인 5인 이상 빈곤 가구의 전기요금 단가는 평균 165.7원/kwh으로 최저생계비가 5배 이상인 1인 고소득 가구의 111.1원/kwh보다 월등히 높았다. 누진제 탓에 가구원 수가 많은 서민층이 가구원 수가 적은 부자보다 비싼 전기를 쓸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6단계 누진요금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누진율은 11.7배로 과도하게 높다. 이로 인해 월평균 전력소비가 100kWh 이하이면 원가의 절반도 안 되는 요금을 내지만, 구간이 높아질수록 가격은 몇 배씩 뛰어오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미국 일본 등은 1.1∼1.5배 수준이며, 누진율이 가장 높은 대만 역시 하계에 2.7배 수준에 불과하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은 매년 제기돼왔지만, 올해는 정치권까지 가세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선봉에 선 국민의당은 지난달 29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을 줄여 가계 부담을 완화하고 대신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에 대해 요금을 더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6단계인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4단계로 줄이고 전체 요금을 낮춰 가정에 부과되는 전기요금을 지금보다 연간 최대 1조원까지 줄인다는 계획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정책위 의장도 누진제를 근본부터 다시 검토할 단계가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시민들도 집단 행동에 나섰다. 포털사이트 다음 토론방인 ‘아고라’에서는 지난달 29일부터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 청원이 시작돼 5일 3시 4분 현재 1만1907명의 서명이 달린 상태다.
그런데 정부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한 것은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고, 고소득층의 전기 사용을 억제하려는 것인데 섣불리 개편하면 부자 감세 효과만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우태희 산업부 2차관은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누진제) 단계를 줄이면 문제가 더 악화된다”며 “누군가 전기요금을 더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 차관은 또 “전기가 남아돈다고 하지만 전력예비율이 지난달 11일 현재 9.3%까지 내려갔다”며 “지금 누진제를 흔들면 (사용량이 늘어) 수요관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부자들한테 세금을 더 걷으려고 대다수 국민들에게 전기 요금을 비싸게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주택용 전기요금은 1kwh당 평균 123.69원으로, 산업용 전기 요금 107.41원에 비해 훨씬 비싸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결국 기업이 싸게 전기를 쓴 만큼 가계가 요금을 더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bettykim@heraldcorp.com ---------------------------------------------
가구규모ㆍ소득규모별 전기요금 단가(2012)
(단위:원/kwh)
가구 규모 최저생계비 미만 가구 최저생계비 5배 이상 가구 전체
1인 105.1 111.1 105.3
5인 이상 165.7 241.4 152.4
전체 121.4 145.8 133.2
(자료:국회예산정책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