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속 숨겨진 프리랜서의 현실

국내 방송업계 비정규직 비율 42%

고용 불안정성·저임금·과로 등 시달려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ά) 행간을 다시 씁니다.

고(故) 오요안나 씨 [인스타그램 캡처]
고(故) 오요안나 씨 [인스타그램 캡처]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MBC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방송업계의 비정규직·프리랜서 채용 관행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오씨는 2021년 5월 3일부터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MBC 보도국 소속 기상캐스터로 일했다. 이후 3년 5개월여 만인 지난해 9월 15일, 오씨는 폭언과 따돌림 등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장문의 유서를 휴대폰에 남기고 세상을 스스로 등졌다.

방송 인력 42%가 프리랜서…을과 을의 경쟁이었다

고(故) 오요안나 씨 [헤럴드DB]
고(故) 오요안나 씨 [헤럴드DB]

유족이 고인의 유서 내용을 공개하면서 오씨의 죽음 이면에 방송업계 내 만연한 비정규직·프리랜서 고용 행태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불안정한 고용 상태 속에서 ‘을의 경쟁’을 하느라 저임금과 과로, 괴롭힘 등에 취약하다.

이에 MBC차별없는노조는 지난 6일 “이번 비극이 발생한 데는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괴롭히는 구조를 공고히 하고 이를 ‘을끼리의 싸움’이라고 방관한 MBC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직 MBC 기상캐스터들도 오씨의 사건을 두고 “나 역시 모진 세월 참고 버텼다”, “당시 누구 하나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며 방송계 노동 현실의 구조적 문제를 꼬집었다.

실제로 방송사의 비정규직 의존 관행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제작되기까지 수십개의 직무가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하지만, 이들 중 정규직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0년 12월 발표한 ‘방송사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실태’ 보고서를 살펴보면, 국내 방송산업 노동자 1만6676명 중 비정규직·프리랜서 등은 6999명으로 전체 인력의 42%에 달한다. 국내 공공부문 방송사 중 이들 비중이 전체 인력의 3분의 2가 넘는 곳도 3곳이나 확인됐다.

프리랜서 대부분 ‘2030 여성’…월급은 정규직 3분의1

[헤럴드DB]
[헤럴드DB]

아울러 방송사 비정규직·프리랜서 성별과 급여수준에 대한 비판도 일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사 프리랜서 대다수(71.2%)가 20~30대 여성이었다. 이들은 기상캐스터, 방송작가, 아나운서, 리포터 등 다양한 직군에서 근무했다.

비정규직·프리랜서가 받는 보수는 정규직 임금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공공부문 방송사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할 때 비정규직은 35, 프리랜서는 24.7에 그쳤다.

비정규직·프리랜서의 성별 차별적 고용은 보수에서도 확인됐다. 남녀 고용이 비교적 균형적인 방송사의 프리랜서 작가는 평균 보수 186만원인 반면, 여성만 있는 곳의 작가 보수는 165만원이었다.

또 여성 프리랜서가 많은 직무인 리포터(98만3000원), 수어통역(122만3000원), 캐스터(120만2000원) 등은 보수가 낮았던 반면 남성 다수 직무인 조명(355만2000원), 편성(279만2000원) 등은 두 배 이상 많았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단체 ‘엔딩크레딧’은 지난 성명을 통해 “방송사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주체는 비정규직들이고, 이들 대부분은 방송사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직원처럼 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들”이라며 “하지만 방송사들은 ‘프리랜서이니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고용 책임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는?…BBC “프리랜서도 정규직 준하는 권익 보호”

BBC [게티이미지]
BBC [게티이미지]

유럽 등의 국가에선 방송업계 비정규직·프리랜서 고용 비율이 우리나라처럼 높지 않다.

2020년 기준 영국 공영방송인 BBC는 전체 인력 대비 정규직 비율이 91%(1만9236명), 비정규직 비율은 9%(1897명)이었다. 프랑스 공영방송 francetelevisions의 비정규직 비율도 7.7%, 독일 제1 공영방송 아에르데(ARD)도 23.3%이었다.

BBC의 경우엔 비정규직·프리랜서 계약 시 정규직에 준하는 의료와 안전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 BBC와 어떠한 형태로든 3년 이상 근무한 인력에 대해선 사측이 정규직 계약을 제안할 수 있다는 내부 규정도 두고 있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캐나다 프리랜서 노동조합 CMG와 단체협약을 맺어 비정규직·프리랜서의 권익 향상을 돕는다.

CMG는 단체협약에 ‘프리랜서 노동자 관련 항목’(Article 30)을 삽입해 프리랜서 보수체계와 제작자로서의 권리를 명문화했다. 나아가 ‘프리랜서의 공정한 채용과 대우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작 및 배포해 프리랜서의 직종을 세분화하고 그에 따른 최저요율을 규정하고 있다.


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