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하얼빈 개봉…전작 이후 4년만
처음으로 악인 아닌 선의 인물들 다뤄
현빈에 믿음…“안중근 진심으로 표현”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내부자들’(2015)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이어 ‘마약왕’(2018), ‘남산의 부장들’(2020) 등을 내놓은 우민호 감독이 4년만에 신작 ‘하얼빈’을 공개한다. 그의 작품세계가 한국 현대사에 이어 근대사까지 시공간이 확장된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현빈 분)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기까지 독립투사들의 긴 분투를 그린 첩보 드라마다.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그와 마음을 한데 모았던 독립군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오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만난 우 감독은 “이전까지 내 영화가 악인들을 주로 다뤘다면 하얼빈은 처음으로 선의를 가진 인물들을 다루게 됐다”고 밝혔다.
우 감독의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는 만큼 실존인물과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캐릭터가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하얼빈’도 마찬가지다.
앞서 ‘남산의 부장들’에선 실존인물을 각색한 김규평(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 박 대통령(박정희), 곽상천(경호실장 차지철), 박용각(김형욱 부장), 전두혁(전두환), 그리고 상상력을 가미해 창조한 로비스트 데보라 심이 등장한다. 10.26 사태 당일과 그 이전 40일간의 서사를 담은 영화로, 1979년을 배경으로 한다.
‘마약왕’도 1970년 초반부터 1979년 박정희 암살 직후인 1980년 이두삼(이황순)이 체포되기까지를 그렸다. ‘뽕’ 수출도 애국이 되던 70년대에 실존했던 마약왕 이황순을 모티브로 한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자멸하는 과정을 139분에 담아냈다.
‘하얼빈’에서는 안중근 의사와 우덕순 의사, 그들을 도왔던 최재형 선생이 실존인물이며, 김상현 의사, 이창섭 의사, 공부인 의사는 영화적 상상을 더한 허구의 인물이다. 실제 독립운동가들의 일부 요소들을 가져와 캐릭터를 재구성했으며, 공부인은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지난 세 작품은 ‘박정희’라는 키워드로 묶인다. ‘남산’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마약왕’에서는 사실상 이두삼이 자신을 박정희 대통령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두삼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가 후반 10분간 약에 취해 미친사람처럼 전화기를 붙잡고 “이 나라는 내 없으면 안 된다. 내가 다 먹여 살렸다 아이가”, “김신조가 내 목을 따러 온다”고 횡설수설하는 장면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하얼빈’에서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날이 1909년 10월26일로,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10.26과 같은 날짜다. 실제로 우 감독은 “10월26일에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들을 연달아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제가 사회적이고 어둡고 범죄적인 면에 관심이 많나 보다”라며 영화적 지향점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우 감독은 ‘시대’ 그 자체보다는 그 안의 ‘인물군상’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스스로 ‘내부자들’부터 ‘남산’까지를 ‘욕망 3부작’이라고 칭하는 이유도 그가 ‘욕망을 좇는 인간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를 내내 카메라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물의 심리 묘사가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다. 이에 우 감독은 작품에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기용해 인물의 섬세한 심리를 잘 표현하도록 했다. 김규평 부장을 연기한 이병헌과 박 대통령을 연기한 이성민, 그리고 마약왕 이두삼을 연기한 송강호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연기파 배우들이다. 특히 ‘마약왕’은 다른 두 작품에 비해 내용 전개가 느리고, 권선징악이 아닌 악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인만큼 주인공 배우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다.
우 감독은 ‘마약왕’ 개봉 당시 여러 인터뷰를 통해 “송강호가 아니었으면 접었어야 했다”며 “빈틈을 배우의 연기와 얼굴로 채웠고, 전적으로 의지했고 맡겨뒀다”고 말했다.
‘하얼빈’에서는 현빈이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는데, 이병헌과 송강호에 비교해 조금 약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대해 우 감독은 “현빈은 안중근의 마음을 진심을 다해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며 “몽골과 라트비아 등 험지에서 많이 촬영했기 때문에 체력이 좋아야 했는데 그는 해병대 출신”이라고 믿음을 표현했다.
카메라 앵글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남산’에서는 김규평과 박 대통령, 김규평과 차지철, 김규평과 박용각, 박용각과 박 대통령 등 일대일 로 마주보고, 이를 카메라가 수평숏으로 담아내는 일이 많았다. 반면, ‘하얼빈’에서는 “동지들이 한 프레임에 모여있는 그룹숏(세 명 이상)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우 감독은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과 여러 작품 같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홍파는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에, 조우진은 ‘내부자들’, ‘마약왕’에 이어 ‘하얼빈’ 등 총 세편에 참여한다. 현빈은 내년 공개되는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도 우민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다.
이병헌은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성민과 이희준, 김소진은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에서 얼굴을 비추고, 김대명도 ‘내부자들’과 ‘마약왕’에 출연했다. ‘하얼빈’에서는 주연배우 중 박정민, 이동욱, 전여빈이 처음 우 감독 작품에 출연해 신선한 만남을 예고했다.
한편 ‘하얼빈’에서도 현빈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우 감독의 작품에서 주연배우가 쓸쓸하고 고독한 감정을 노래를 부르며 표현하는데, ‘남산’에서 이성민이 궁정동 안가에서 ‘황성 옛터’를 부르고, ‘마약왕’에서는 송강호가 속옷에 모피코트를 입고 ‘멸공의 횃불’을 부른다.
아울러 ‘하얼빈’에서는 또 어떤 명대사가 탄생할 지 또한 관심사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내부자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남산의 부장들)에 이을 명대사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