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 올해 ETF 17.1조 순매수…전년比 9.4배
ETF 제외 시 韓 증시 개인 투자자 ‘순매도세’
韓 ETF 순자산총액·종목수, 5년 만에 각각 3.2배·2.1배 커져
국내 투자 ETF 비중 64.2% ‘역대 최저’…“해외주식형 ETF 역전 시간문제”
“트럼프發 불확실성, 韓 증시 외톨이 현상 지속 위험”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올해 동학개미(국내 증시 소액 개인 투자자)들의 상장지수펀드(ETF) 쏠림 현상이 역대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말까지 개인 투자자의 ETF 순매수액은 17조원 선을 넘기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 같은 결과가 국내 증시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외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란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증시 대비 ‘소외’ 현상이 뚜렷했던 국내 증시 대신 미국 등 해외 증시 종목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ETF의 폭풍 성장세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한국 경제가 트럼프발(發) 리스크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만큼, 개인 투자자의 국장 탈출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동학개미, ETF에 ‘올인’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종가 기준 개인 투자자는 올해 들어서만 국내 증시에서 ETF를 17조1160억원 규모로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12월 한 달을 남겨둔 상황에서도 지난해 기록했던 개인 ETF 순매수액(1조8173억원)의 9.4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올해 개인 투자자 기록한 ETF 순매수액은 지난 2002년 10월 14일 국내 1호 ETF인 삼성자산운용 ‘KODEX200’이 상장한 후 기록한 연간 기준 역대 최대치다. 기존 연간 최고 금액은 일명 ‘동학개미운동’이 펼쳐졌던 지난 2021년 9조7347억원이다.
개인 투자자는 올 한 해 코스피 시장에서 부진한 흐름을 보였던 개별 종목 대신 ETF 매수에 ‘올인’한 모양새다.
지난달 29일까지 개인 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13조7693억원 규모의 순매수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ETF에 대한 순매수액을 제외할 경우 개인 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3조3466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투자자가 올해 기록한 ETF 순매수액은 같은 기간 코스닥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기록한 순매수액 7조4050억원의 2.3배에 달했다.
국내 1호 ETF가 상장한 후 22년간 기록한 개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상장 ETF 누적 순매수액은 44조7106억원이다.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자(-28조2737억원), 기관 투자자(-19조846억원)의 움직임과 대비되는 움직임을 개인 투자자가 뚜렷하게 보인 셈이다.
이 결과 국내 ETF 시장의 규모도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는 모양새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증시엔 총 929개 종목의 ETF가 상장, 순자산총액은 166조1784억원에 이르렀다. 지난 2023년 말 대비 117개 종목이 신규 상장했으며, 순자산총액도 27.15%(45조1127억원)나 늘었다. 지난 2019년 450개 종목, 51조7123억원 규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5년 만에 국내 ETF 시장의 상장 종목 수는 2.1배, 순자산총액은 3.2배나 커진 셈이다.
동학개미 ETF 매수 가속화는 오히려 ‘코리아 엑소더스’
개인 투자자의 국내 상장 ETF에 대한 순매수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오히려 이 같은 현상이 국내 증시에 대한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란 분석도 있다.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국내 상장 전체 ETF 순자산 중 국내 자산을 기초로 한 ETF 비중은 64.2%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내 ETF 비중은 2021년 말 74.2%, 2022년 말 73.4%, 2023년 말 76.3%로 75% 안팎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비율이 12%포인트가량 대폭 줄면서 64% 대로 처음 진입한 상태다.
반대로 해외 ETF가 차지하는 비중은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국내 증시 상장 ETF 중 해외 자산을 기초로 한 상품의 순자산총액은 이달 들어 처음으로 57조원 선을 돌파했다. 올해 2월 초 30조원 선을 넘어서더니 5월 말 40조원 선을 돌파했고, 11월 마지막 영업일에는 57조5725억원에 이르면서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ETF의 비중도 연초 23.2%에서 34.7%까지 불어난 상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속도면 국내 주식형 ETF의 비중이 해외 주식형 ETF에 역전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자산과 글로벌 자산을 섞어 담는 ‘혼합형’ 상품에 관한 관심도 커지는 상황이다. ‘국내+해외’ 투자 ETF의 순자산총액이 연초 8482억원에서 11월 말 1조8509억원으로 2배 넘게 증가하면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증시가 약세를 보이더라도 미국 등 잘 나가는 해외 증시가 리스크를 덜어주고, 환차익 역시도 손실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반영하듯 연초 이후 개인 투자자의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 중 국내 주식형 상품은 2개에 불과할 정도로 개인 순매수 집중 상품 대부분이 해외 증시와 관련됐다.
이처럼 해외 ETF로 동학개미들의 투자 쏠림이 심화한 분명한 이유는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자의 실망감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해외주식형 ETF의 평균 수익률은 29.53%에 이르지만, 국내주식형 ETF의 평균 수익률은 -9.84%에 불과했다.
시장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선 국장 탈출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할 관세 정책이 반도체·자동차 등 국내 수출 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단 우려가 크다. 여기에 트럼프의 승리 이후 나날이 높아지는 달러 가치마저도 수출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에도 악재다. 한국은행도 최근 2025~2026년 국내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9%와 1.8%로 하향 조정하며 사실상 저성장 리스크를 인정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성장률이 내년보다 내후년에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 것은 당분간 국내 경기의 강한 회복 모멘텀(동력)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경고의 의미”라며 “여러 요인이 해소되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해야 하는 데다 트럼프 2기 정책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한국 경기와 증시 외톨이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위험도 있다. 최소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추진될 각종 정책 관련 불확실성 리스크가 해소되거나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실시와 같은 모멘텀이 가시화돼야 국내 경기와 증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전망”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