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잠재성장률 밑도는 성장 전망
수출 감소 속 소비 부진...금리 인하 명분
‘강달러’로 인한 고환율은 여전히 부담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한국은행이 28일 기준금리를 3.25%에서 3.0%로 내렸다. 저성장·고환율의 딜레마 속에 성장이 더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하향했다. 내년 성장률은 2.1%에서 1.9%로 1%대 성장을 예고했고, 2026년에도 1.8%의 저성장이 나타날 것으로 봤다. 한국 경제의 1%대 저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로 읽힌다.
성장 버팀목이던 수출 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높은 수준의 금리로 소비부진마저 이어갈 경우, 우리 경제가 주저앉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예상보다 빨리 금리 인하로 돌아서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후년에도 1%대 저성장…“韓, 고금리 못버틴다”
한은의 통화정책을 돌아서게 만들 정도로 성장은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우리나라 성장률은 3분기 0.1%에 불과했다. 기존 예상 대비 0.4%포인트나 낮은 쇼크 수준의 결과다.
문제는 앞으로도 성장률이 개선될 가망이 낮다는 점이다. 한은은 이날 내년과 후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1.9%와 1.8%로 내렸다.
골드만삭스도 지난 26일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8%로 내다봤다. 한은보다 0.1%포인트 낮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아시아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수출 약화는 이미 올해 하반기 시작됐고 이에 따라 투자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경제심리는 위축할 만큼 위축했다. 한은이 조사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보다 1.0 포인트 떨어졌고, 6개월 후의 경기 전망지수는 2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지수(CBSI)도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위기가 가속할 수 있다. 권구훈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정책은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뚜렷한 경기 둔화를 인정하면서도 금리를 동결해 부양을 계속 미룬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이다. 인플레이션 수준도 이미 물가안정 목표(2.0%) 안으로 들어온 만큼, 금리 인하 결정에 명분을 줬다. 한은이 전망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올해 2.3%, 내년과 후년엔 1.9%다.
문제는 ‘킹달러’ …원/달러 환율 1400원대
경기진작을 위해 금리를 인하했지만, 고환율은 여전히 통화정책에 부담을 주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선 이후 미국 물가·금리 상승 기대 등을 업고 뛰기 시작했다.
지난 13일엔 장중 1410원을 돌파해 2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환율은 안정되지 않고 1400원대 선을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통위가 금리를 빠르게 내리게 되면 환율은 상방이 열리고 자금 유출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달러 유동성 문제와 외환위기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물론 달러 강세에 따른 고환율은 전세계가 겪는 문제다. 다만 그 파고는 우리가 더 심하다. 최근 우리나라보다 통화 가치가 많이 절하된 나라는 일본 정도밖에 없다. 일본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금리 수준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통화 가치 절하는 이례적으로 위협적인 수준이다.
당분간 환율이 안정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핵심은 관세다. 미국 내 물가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금리 인하 속도가 조절될 수 있다. 미국 기준금리가 떨어지지 않으면 달러는 계속 강세를 나타낼 수밖에 없고, 미국보다 한국 기준금리가 낮은 금리 역전 상황도 지속된다. 한국 입장에선 금리를 빠르게 내리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는 셈이다.
이날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으로 한미금리차는 1.75%포인트를 유지하게 됐다. 금리가 사실상 돈의 가치임을 감안하면, 달러 강세를 지지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한국 경제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지금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도 그렇고 저성장이 매우 우려되고 있고,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설이 들린다”면서 “비상 상황에 맞는 민첩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경제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