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삼성패션디자인펀드 수상자 김지용
빛활용 ‘선 블리치’ 기법…지속가능성 주목
“창조적 패턴을 활용한 원단플레이 시도”
“섬세한 실루엣과 독창적인 입체감 지향해”
“학생 때 쓰고 다녔던 비니(beanie·동그란 모자)가 태양 빛에 그을러 색의 결(color block)이 생겼어요.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 빈티지 시장을 돌아다니며 오래된 커튼이나 식탁보를 모았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은 패션계의 격언 중 하나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의미하지만 새로움을 찾는 일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21일 헤럴드경제는 서울 강남구 비이커 청담에서 지용킴의 대표인 김지용 씨를 만나 ‘세상에 없던 패션’을 선보이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인터뷰는 김씨의 삼성물산 패션부문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2년 연속 수상을 기념해 진행됐다.
그는 햇빛, 바람 등 자연의 요소들에 옷들을 ‘방치’해 흔적의 패턴을 입히는 사람이다. 빛 바랜 옷들이 버려지는 이유가 ‘멋있게 빛 바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 게 출발이었다. 1990년생인 그는 일본 문화복장학원을 거쳐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학·석사를 졸업했다. 옷과 원단을 햇빛에 오랜 시간 그을리는 ‘선 블리치’ 기법은 그의 졸업 작품 주제였다. 1~2달이 소요되는 작업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그렇기에 세상에 단 하나뿐민 유일한 색조의 무늬가 입혀진다.
패션업계는 지용킴의 브랜드가 담은 ‘지속가능성’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자연을 디자인에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올해 그를 심사한 한 패션업계 인사는 “빠른 트렌드 속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환경적 고민을 해야 하는 시대의 흐름을 잃지 않은 디자이너”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선 블리치’는 지용킴의 대표 디자인 기법일 뿐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창조적인 패턴(creative pattern work)을 옷에 입히는 ‘원단 플레이’가 지용킴의 중심을 지킨다. 그는 이날 핸드드레이핑(수작업으로 옷감을 두르는 입체적 재단법)된 뒤틀린 니트의 옷을 보여주며 “섬세한 실루엣을 만들어 독창적인 입체감을 보여주는 우아한 남성복이 저희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 디자이너가 아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옛옷들의 흔적에서 브랜드의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김 디자이너는 “저는 과거의 옷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게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의무”라며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있는 복식에서 시작해 지용킴답게 재해석하는 게 저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용킴의 특징 중 하나는 갤러리 등 ‘매장’이 아닌 공간에서 매년 정기적인 전시회를 연다는 점이다. 그는 올해도 익선동과 성수동에서 총 2차례의 컬렉션 전시를 진행하며 크리에이터로서의 철학을 대중에게 알렸다. 그는 “런웨이나 사진으로는 전해지지 않은 감각들이 있다”면서 “도슨트를 통해 옷이 만들어진 과정 등을 친절한 형태로 전달하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가전제품, 신발, 전기자전거 등 다양한 소비재들과의 협업도 눈길을 끈다. 올해 4월에는 미국 프리미엄 전기자전거 브랜드 슈퍼73(Super73)과 한정판 바이크를, 6월에는 삼성전자와 액자형 스피커 뮤직 프레임의 스페셜 에디션을 발매했다. 미군 스타일의 의류를 판매하는 알파인더스트리와는 올해에 이어 25SS(봄·여름)시즌도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SFDF를 수상한 후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글로벌 패션 플랫폼 홍콩 하입비스트(HYPEBEAST)가 선정하는 ‘올해를 빛낸 디자이너 100인(2023)’에 선정됐고 올해는 2024 LVMH 프라이즈 세미-파이널리스트(20인)에 뽑혀 파리를 다녀왔다. LVMH 프라이즈는 루이비통, 디올 등 럭셔리 브랜드의 모기업 LVMH가 업계를 이끌어갈 창의적 디자이너를 발굴하기 위해 2013년부터 운영하는 세계적인 어워즈다.
김 디자이너는 “20인에 선정돼 올해 파리 패션위크 기간 쇼룸에서 지용킴을 알렸다”면서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 조나단 앤더슨 등 세계적인 유명 디자이너와 루이비통 재단 관계자 등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얻었다”고 후기를 전했다.
지용킴의 옷들은 현재 10 꼬르소 꼬모 서울은 물론 런던·파리·뉴욕·로스앤젤레스·싱가포르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도쿄의 지알에이트 등 세계적인 편집숍 20여 곳에 입점해 있다. 그는 “비슷한 감도를 지닌 브랜드들 사이에서 더 잘 이해받을 수 있어, 옷을 대변할 수 있는 편집샵들에 입점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보다 더 바쁜 내년이 예상되는 지용킴, 앞으로는 또 어떤 작품들이 나오게 될까.
지용킴은 전혀 다른 결의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선 블리치에서 더 나아가 ‘오랜 시간의 흔적(naturally aged)’을 담은 또 다른 버전의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오는 29일까지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비이커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내년 컬렉션을 특별히 만나볼 수 있다. 김희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