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친환경’ 트럼프, IRA 대폭 축소 예고하나
CCS 보조금 변경·폐지 가능성 낮다는 관측
선제적 CCS 투자해 온 국내 기업 수혜 기대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탈(脫) 친환경 정책 노선을 내세우고 있지만 탄소 포집·저장(CCS) 분야에 대해선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CCS를 선제적으로 연구개발 투자해 온 SK와 포스코, 삼성, GS 등 국내 기업에도 수혜가 기대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CCS는 화석연료 사용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뒤 압축·수송해 땅속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탄소중립 기술은 아니지만 화석연료를 비교적 친환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안이자 징검다리로 여겨진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친환경 생태계 전반에 걸쳐 세액공제 및 산업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CCS 분야 보조금 지급에 대해선 변경이나 폐지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현지 산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부활을 예고한 석유·가스의 생산량 확대를 위해선 CCS의 일종인 EOR(원유회수증진)이 필요하고 천연가스를 활용해 블루수소·암모니아를 생산할 때도 CCS가 쓰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립을 강조해 온 트럼프 당선인으로서도 CCS는 석유·가스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길이라는 얘기다.
트럼프 당선인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주요 석유·가스 기업이 탄소배출 규제 대응을 위해 그간 CCS 관련 투자를 지속해 왔고 상당수는 이미 투자를 집행했다는 점이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석유·가스 기업인 옥시덴털 페트롤리움의 비키 홀러브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의 재집권이 석유·가스 사업에 매우 긍정적이며 CCC의 일종인 DAC(직접공기포집) 프로젝트에 특히 낙관적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이 에너지 안보에 대한 필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트럼프 재집권 이후에도 CCS 보조금이 유지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1기 행정부 시절에도 CCS 프로젝트에 대한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법안에 서명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CCS 관련 지원이 지속될 경우 CCS 시장 선점을 위해 일찌감치 관련 투자를 집행해 온 국내 기업에도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확보에 지리적 한계가 뚜렷하고 철강·석유화학·정유 등 화석연료를 당장 중단하기 어려운 산업 비중이 커 탄소중립 달성에 있어 CCS 의존도가 큰 편이다. 블룸버그NEF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상 전체 감축량의 41%는 CCS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시나리오상의 14%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에 국내 주요 기업은 CCS 분야 연구개발과 투자에 적극 임하고 있다.
CCS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SK그룹이다. SK이노베이션 E&S는 2012년부터 개발에 참여해 온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 CCS 기술을 적용해 저탄소 액화천연가스(LNG)를 생산할 계획이다. 바로사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LNG를 국내로 들여와 블루수소를 만든다는 구상도 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콘티넨털 리소스 등 미국 에너지 기업과 북미 CCS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21년부터 CCS 전담 조직을 두고 미국, 호주, 동남아 등에서 해외 사업 개발을 진행해 온 SK어스온은 올해 8월 호주 해상 이산화탄소 저장소 탐사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 E&S와의 협력을 통한 공동 사업 추진도 기대하고 있는 대목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도 지난해부터 CCS 전담 조직을 두고 사업 개발을 추진 중이다. LNG 전 밸류체인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CCS 사업과의 연관성이 크다고 봤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텍사스주 해상 CCS 지중저장소 사업 국제입찰에서 2개 광권을 확보하며 CCS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또한 호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고갈 가스전 등에 대한 사업성 평가를 위한 공동 조사 사업을 진행하며 CCS 가치사슬 구축을 추진 중이다.
에너지 전환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삼성E&A도 CCS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암모니아 생산 플랜트 EPC(설계·조달·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CCS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롯데케미칼, 포스코홀딩스가 함께 참여하는 말레이시아 사라왁주 H2비스커스 프로젝트에서 삼성E&A는 직접투자, 건설, 운송, 활용을 포함한 프로젝트 전체를 이끌고 있다.
GS칼텍스 역시 신사업으로 CCS를 주목하고 있다. CCS의 주요 기술이 석유개발 기술과 유사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GS칼텍스의 경우 이산화탄소 저장을 포함한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사업의 전 영역에 참여하고 있는데 올해 4월부터 한국화학연구원과 함께 기술 개발, 인프라 점검, 상용화 검토 등에서 협력하고 있다.
CCS 관련 국내 기업 간 협업도 활발하다. 일단 동해안을 중심으로 연구·실증이 진행 중이다. 동해가스전 사업은 울산·부산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허브 터미널에서 압축·액화한 후 해저 파이프를 통해 동해 폐 가스전 고갈 저류층에 주입·저장하는 프로젝트다.
해외 사업으로는 SK에너지와 SK어스온, 삼성E&A, 삼성중공업, 롯데케미칼이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와 진행하는 셰퍼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셰퍼드 프로젝트는 국내 산업단지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국내 허브에 집결시킨 후 말레이시아로 이송·저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