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페이커’ 꿈꾸며 구슬땀 흘리는 프로게이머 지망생들
“극소수에 허락된 길이지만…성취 이루는 경험은 매우 소중”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이젠 부모님도 롤드컵을 챙겨보세요. 좌우명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자’입니다.”
21일 오후 게임 훈련에 매진하던 이찬하(16) 군은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하루 평균 3~4시간씩 학원에서 트레이닝을 받는다”며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롤드컵 경기가 열릴 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꼬박꼬박 챙겨 본다”고 말했다. 이 군의 롤모델은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페이커(이상혁)’다. 이 군은 그 이유에 대해 “실력도, 인성도, 모든 면에서 페이커는 그저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라고 답했다.
e스포츠는 이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인기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의 세계적 스타로, 그의 활약은 수많은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차원을 넘어 ‘미래의 진로’로 e스포츠에 도전한 ‘제2의 페이커’ 지원자들을 헤럴드경제가 직접 만나봤다.
21일 오후 헤럴드경제가 찾은 Bnk 피어엑스 아카데미는 e스포츠 교육을 제공하는 게임아카데미다. 이곳에서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청년들은 게임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는 등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프로게이머는 팬들에게 수준 높은 경기력과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선사하며 e스포츠 산업의 성장을 견인한다. 이에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은 멋진 경기력을 갈고닦기 위해 매일 같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이날 게임아카데미에서 만난 지망생들은 대부분 “개인 연습을 하다 밤늦게 잠이 든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연습량이 많은 만큼 몸이 상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프로게이머 지망생 김건우(17) 군은 “학원에서 게임을 더 잘할 수 있는 법도 배우지만, 자세를 바르게 하고 게임을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마우스를 잡는 법부터 의자에 앉는 자세까지도 전부 바로잡고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정서적 팀 워크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한서(17) 군은 “게임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전략을 짜서 하는 것이다 보니 팀원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전략을 같이 고민하고 실제로 수행하면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고 답했다.
e스포츠연구개발원과 Bnk 피어엑스 아카데미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구마태 대표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자체는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길”이라면서도 “게임 시장 안에서 프로게이머 외에도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 한 분야에서 열정을 쏟고 성취를 이루는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그러면서 “게임이 창출할 수 있는 가치를 더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스포츠 산업은 해가 갈수록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영국 런던 시장 직속 홍보기관 런던앤드파트너스는 “올해 런던에서 치러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으로 런던이 누리는 경제 효과가 1200만 파운드(약 214억원)을 넘는다”고 밝혔다. 딜로이트는 “지난해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과 올해 롤드컵까지 개최된 런던에서 내년까지 3억 파운드(약 5362억원) 이상의 경제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e스포츠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e스포츠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e스포츠 산업 규모는 1514억4000만원으로 집계됐다. 1048억3000만원이던 전년 대비 약 44.5% 늘어난 수치다. 개인 스트리밍 광고 매출과 데이터 플랫폼 매출 등을 포함한 확장 산업 규모를 기준으로 하면 2816억6000만원으로 1년 전(1496억8000만원)보다 약 88.2% 늘었다.
e스포츠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중심에는 막강한 팬덤이 있다. 올해 롤드컵 결승전의 글로벌 시청자 수는 중국을 제외하고도 약 1억명에 달했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빌리빌리를 통해 생중계를 지켜본 4억명 이상의 시청자 수를 포함하면 이번 대회 시청자 수는 총 5억명을 훌쩍 넘어간다. 최고 동시 시청자 수(PCU)의 경우 지난해 결승 시청자 수 640만2760명을 넘어선 694만1610명을 기록했다.
e스포츠 대표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스타 페이커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 역시 이러한 산업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페이커만의 인간적 매력 또한 팬덤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 20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외교부가 주최한 ‘2024 글로벌 혁신을 위한 미래 대화’ 기조연설에 참석해 ‘도전’과 ‘겸손’을 강조했다. 그는 연설에서 “늘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실패는 나쁜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저는 그 실패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실패는 작은 성공이었고, 성공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이어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남들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곧 겸손”이라며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