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요원·경찰 감시 속 휴식은 자유
세 끼 식사에 푸짐한 간식도 이점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전자기기의 사용이 일체 금지된 채 창문과 출입구가 봉쇄된 곳에 ‘감금’돼 하루 8시간씩 꼬박 19일을 일 해야 하는 아르바이트가 있다.
일당은 약 9만7000원.
많지 않은 금액에도 매년 화제가 되는 이 알바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험지 포장 업무다.
1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2025학년도 수능 시험지 포장 알바에 뛰어든 스무살 A씨는 수능 종료 시각인 지난 14일 오후 5시30분 19일간의 감금에서 풀려나면서 “경험자로서 무조건 ‘꿀알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이 알바 공고를 보고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여 지원했다”는 A씨는 지난달 27일 세종시의 한 인쇄공장에 입소해 하루 8시간씩 시험지 포장 업무를 하고 총 184만8890원(실수령액)을 받았다.
그는 “모든 환경이 좋았지만 특히 식사가 살면서 먹어본 급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입소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흑백요리사’의 ‘급식 대가’님이 몰래 조리하고 계신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면서 “세끼 식사뿐만 아니라 치킨, 피자 등 다양한 간식이 제공돼 매일매일 만족했다”고 했다.
합숙 기간 스마트폰과 노트북은 물론이고 MP3, USB, 전기면도기, 헤어드라이어까지 모든 전자기기 사용은 금지된다. 세 끼 식사와 간식이 제공되지만 술은 허용되지 않는다. 100명이 합숙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알바는 남성만 지원할 수 있다.
A씨는 “각 50명씩 주간조와 야간조로 나뉘어 포장지 도장 찍기, 무게 측정, 박스 테이핑, 박스 옮기기 등의 작업을 했다”며 “숙소는 14인 1실로 운영됐다”고 했다. 이어 “업무는 단순하지만 무거운 종이를 다뤄야 하고 오랜 시간 서서 작업해야 해 근력과 지구력이 요구된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힘들어할 강도의 작업이 꽤 잦다”고 덧붙였다.
근무시간 동안 보안요원과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받지만 여가 시간에는 휴게실과 식당에 있는 TV 시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등 최대한의 자유가 주어진다.
그는 “보안요원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작업 중에 시험 문제를 들여다볼 수 없고 공장 안에 CCTV가 많아 문제 되는 행동이 있으면 불려 간다. 외부와의 소통은 일체 단절된다”며 “휴식 시간에는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 분위기가 됐는데, 나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쉬는 시간에 읽었다. 무림 소설이 가장 사랑받는 장르였다”고 했다.
지난해 수능을 치렀다는 그는 “수험생이었을 때는 시험지 하나에 이렇게 많은 분의 노고가 담겨있는지 미처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되면서 시험지의 무게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디톡스’를 해보고 싶거나 단체 생활을 경험하고 싶은 분, 육체노동에 자신 있는 분들에게는 좋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6년 같은 이 알바를 했다는 B씨는 “돈이 급한 사람이 아니면 추천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B씨는 “20대 중반 구직에 실패해 돈을 벌려고 2015년 모의고사 시험지 포장 알바를 한 후 2016년에 수능 시험지 포장 알바를 했었다”며 “일 자체가 많이 힘들지는 않지만 전자기기 사용이 안 되고 이동에 제약이 있는 점이 안 좋다”고 했다.
실제로 매년 10월 말 수능이 가까워지면 구인·구직 사이트에 수능 시험지 포장 알바 모집 공고가 올라오는데, 올해 공고가 뜬 뒤에도 SNS에서는 “무조건 한다”, “삼시 세끼에 이 정도면 꿀알바”부터 “19일이나 갇혀 사는데 시급이 너무 짜다”,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등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