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상수기자의 상수동 이야기5> 상수동, 그리고 재개발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전라북도 고창.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몇 시간이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무작정 기다리며 올라탔던 버스. 버스전용차선은 알려지지도 않았던 그 시절, 10시간이 넘도록 좁은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뒤척거려야 했던 고행길이지만, 아버지는 명절 때마다 단 한 번도 고창행(行)을 생략하신 적이 없다.

버스에 내려 할머니 댁을 향하던 좁은 골목길, 말없이 가슴 가득 고향 냄새를 들이마시곤 살며시 미소를 짓던 아버지의 얼굴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때였다. 오랜 여행으로 진이 배긴 엉덩이와 허리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어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 분의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라마 와 닿는 나이가 됐다. 무엇인가 그리운 게 하나둘씩 늘어나는 나이가 된 듯하다. 안타까운 건, 서울 달동네를 전전하던 필자의 고향은 이미 모두 아파트로 뒤바뀌었다는 점. 기억에도 없지만, 답십리 어딘가에서 태어났다는 고향(?)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번째 고향집인 공덕동 역시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학창시절을 보냈던 북아현동 역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동네가 됐다.

재개발의 논리는 복잡하다. 그 중심에서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절실히 실감한다. 돈과 돈의 다툼, 법과 불법의 경계 속에서 생존의 문제가 처절하게 얽혀 있는 게 재개발의 현장이다. 찬성과 반대라는, 바늘 하나 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대결 속에서 제3자의 목소리는 말 그대로 제 3자일 뿐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필자의 추억이 담긴 고향집, 골목길, 동네 가게, 놀이터 그 모든 건 이제 오로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이 됐다.


재개발과의 질긴 인연은 이제 끝난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상수동으로 이사를 온 뒤에도 여전히 재개발은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연애 시절, 상수 슈퍼를 비롯, 상수 상회 등 간판을 가리키고 아내와 키득키득 웃으며 거닐었던 상수역 뒷골목은 이미 2011년에 사라졌다.

이곳에는 상수 1, 2구역이란 이름이 달렸고, 현재 래미안 밤섬 리베뉴가 한창 공사 중이다. 약 1000여가구의 대단지가 들어선다고 한다. 상수역에서 한강 방면으로 통하는 뒷길에 흙을 가득 실은 트럭이 아침저녁으로 쉼 없이 오가게 된 것도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다. 아침이면 길가에 끝없이 줄지어 주차돼 있는 트럭을 만날 수 있다.

줄지어 주차돼 있는 트럭 사이로 오랜 기간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청국장집도 하나 있다. 부꾸막 청국장이란 가게. 한결 같은모습에 점심시간만 되면 회사원으로 북적거리는, 사람 냄새나는 곳이었는데, 재개발 때문인지 어째 요즘은 쓸쓸하게만 보인다. 


그 건너편엔 지금은 사라진 서강껍데기가 있었다. 이름은 마치 껍데기 전문점 같지만, 반쯕 익혀나오는 소금구이가 가장 인기가 좋다. 물론 소주 한잔과 함께 하는 껍데기 또만 별미. 재떨이를 달라면, 아무 곳이나 바닥에 버리라고 호기(?) 있게 말하던 주인에, 허름한 내부를 가득 채운 고기 냄새가 정감 있던 곳. 낡은 벽 가득한 유명 연예인의 사인을 보며 신기해하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서강껍데기는 재개발 이후 이곳을 떠나 합정역 인근으로 옮겼다. 허름했던 간판은 레온사인이 화려한 간판으로 교체됐다. 이사한 뒤로는 가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화려한 그 모습이 조금은 낯설다.

예전 서강껍데기 그 안 골목엔 수타짜장면으로 유명한 중국집 취홍도 있었다. 배달을 하지 않는 곳으로, 중국집의 기본인 짬뽕과 짜장 맛이 일품. 하지만 지금은 이곳 역시 재개발로 사라졌다. 마포 쪽으로 옮겨서 새롭게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옛날서울불고기. 점심 저녁이면 끝없이 줄 서는 맛집으로 유명한 이곳도 원래는 상수동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개발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떠났을 때에도 끝까지 남아 버텼으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광흥창역 인근으로 옮겼다는 후문. 광흥창으로 옮긴 이후에도 여전히 끝없이 이어진 줄을 자랑한다. 참고로 옮기기 전이나 후나 긴 줄이 무서워(?) 아직 한 번도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다.

이들 가게 모두 멀리 가지 않고 인근에서 다시 터전을 잡았다. 어쩐지 재개발을 피해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같아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상수동에서 합정역으로 좀 더 눈길을 돌리면, 메세나폴리스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서도 이미 공사가 한창이다. 절두산 성지 인근 지역 역시 재개발로 들썩인다고 한다. 당인리 발전소 개발 방안이 확정되면서 상수동 일대에도 다시한번 재개발 열풍이 불 조짐이란 말도 들린다. 


아직 문명의 이기가 범접하지 못한 곳을 여행할 때마다, 항상 10년이고 20년이고, 지금 이모습 그대로이길 바랄 때가 많다. 동시에 그러한 바람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도 잘 알고 있다. 이미 온갖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그들에겐 그런 기회를 박탈하려 하는 ‘이중성’ 때문이다. 재개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머물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다만, 상수동이 상수동인 이유를 좀 더 많은 이가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몰라보게 변해버린 홍대 앞을 벗어나 상수동에 뿌리를 내린 이들만의 문화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단지로 바뀌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이미 상수동은 상수동이 아니지 않을까.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지금의 알콩달콩한, 걷는 맛 보는 맛이 있는 상수동 골목길이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모든 고향과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필자에게, 상수동은 현존하는 공간 중에서 가장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자, 앞으로 더 많은 추억을 쌓을 곳이다.

필자 뿐 아니라 상수동 곳곳에 담겨 있는 수많은 연인들, 청춘들의 추억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쌓여가고 있겠는가. 상수동 골목길 그 곳에서 말이다.

dlc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