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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리 무는 분노사회] ③ '백종원 폭발' 2700건…시청자 분노 악용하는 미디어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분노사회’라는 말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범죄는 점점 더 극악무도해지고 사람들은 사소한 이유에도 화를 낸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분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이 또 다른 분노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미디어는 오히려 분노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분노 속에서, 또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분노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커지는 반면, ‘화’를 유발하는 상황들이 발생해 상충하는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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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2 화면 캡처)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넌 존재 자체가 죄악. 판결은 사형. 죽어버려 X진상!”

KBS2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 1회의 첫 장면에서 이루다(백진희)는 증오하는 직장 상사 백진상(강지환)에 이렇게 말한다. 이후 장면들에서도 이루다는 백진상을 노려보며 “죽어. 너 같은 사람은 죽어도 된다”면서 악에 받친 저주를 퍼붓는다.

시청자들은 이런 대사를 비롯해 이루다가 백진상에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으며 회사를 뒤집어 놓는 장면 등에서 “너무 심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분노를 캐릭터가 대신 폭발시킴으로써 대리만족을 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극중 인물이 화를 참는 ‘고구마’ 같은 상황보다 물건을 부수고 사람의 뺨을 때리는 행동에 더욱 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미디어는 이를 이용해 좀 더 자극적이고 의도적인 ‘화’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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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화면 캡처)



■ 분노조절장애와 ‘분노 유발자’, 미디어가 ‘화’를 다루는 법

최근 방송가에서 자주 쓰이는 설정은 바로 ‘분노조절장애’다. 지난 6월 종영한 OCN ‘미스트리스’에서 배우 최희서는 겉보기에는 존경받는 교사와 이상적인 아내가 돼야 한다는 강박과 스트레스로 인해 분노조절 장애를 앓는 인물 한정원을 연기했다.

지난 9월 종영한 MBC ‘사생결단 로맨스’는 사고로 인해 테스토스테론이 과잉분비돼 승부욕의 화신이 되고 분노조절을 하지 못 하는 한승주(지현우)를 그렸다. 한승주의 지인들은 “평소에는 멀쩡한데 건들면 돌아버린다”며 그를 설명한다. 한승주는 첫 회부터 난폭운전으로 신경전을 하던 상황에서 두 차의 블랙박스를 끄고 골프채를 무자비하게 휘두른다.

이런 분노조절장애는 같은 달 종영한 tvN ‘아는 와이프’에도 있다. 서우진(한지민)은 일찍 엄마가 돼 극한 시련을 겪고 결국 히스테리를 넘어선 분노조절장애 상태에 이른 인물이다. 내년 1월 첫 방송 예정인 SBS 월화드라마 ‘열혈사제’에서도 분노조절장애, 강박장애, 격분장애를 모두 가진 카톨릭 사제 김해일(김남길)이 존재한다.

이토록 많은 분노조절장애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건 곧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며 공감을 얻는 특성상 분노조절장애의 심각성이 대두되는 요즘을 캐릭터에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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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화면 캡처)



이 가운데 예능계가 ‘분노 유발자’를 만들어낸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이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주로 등장하는 가게 사장님의 모습은 불성실하거나 진정성이 없거나 실력이 부족하거나 고집을 피우거나 하는 모습이다. 백종원은 그들과 대립하며 솔루션을 제시한다. 그 과정이 어찌나 속 터지는지 ‘백종원 분노’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포털 사이트에서는 1600여 건의 기사가 나온다. ‘백종원 폭발’이라고 치면 무려 2700여 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골목식당’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부아가 치미는 심경을 쏟아낸다. 백종원이 사장님들의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으며 혼을 내는 모습이 대리만족할 법도 하지만 그 정도로 시청자의 분은 풀리지 않는 모양새다. 최근 역대급 분노를 일으켰던 서울 홍은동 포방터시장 편의 ‘홍탁집 아들’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다.

이 외에도 KBS2 ‘안녕하세요’, KBS조이 ‘연애의 참견’ 등은 각각 장수를 하고 시즌2까지 론칭했지만 지나치게 시청자의 짜증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갈등’을 대표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전파를 타는 일도 흔해졌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MBN ‘속풀이쇼 동치미’ 등이 대표주자다. 전자에서는 만삭인 부인이 집안일을 하고 장모에게 예의 없이 구는 남편, 이를 바라보며 속상해하는 며느리로 인해 갈등을 빚는 모습이 주로 비춰진다. 후자는 ‘속풀이쇼’인 만큼 아들 편애, 각방 사용, 밖에서만 천사표인 남편 등 부정적인 주제가 대부분을 이룬다.

업계 관계자 A씨는 “대중은 미디어가 나대신 ‘권선징악’을 실천해주는 데에서 쾌락을 느낀다. 백종원이 가게 사장님들을 혼쭐내고, 패널들이 황당한 사연의 주인공에 타박하는 등 장면들은 대중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내가 방송 속 주인공보다는 덜 나쁘다는 위안을 토대로 욕을 하고 비난하며 합리화를 하게 만든다”면서 “요즘의 미디어는 이런 나쁜 공감을 부추기고 시청률을 얻는다. 사람의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라고 미디어가 분노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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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조이 화면 캡처)



■ “짜증나는데 자꾸 보게 돼”...나쁜 공감 부추기는 씁쓸함

이처럼 수많은 프로그램에서는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황당한 사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방송을 본다. 자극적인 장면에 익숙해져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는 탓이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사람들은 극적인 장면에서 호기심을 느낀다. 사건이 예상치 못 한 방향으로 진행될수록 자꾸만 보고 싶은 심리가 생긴다”면서 “특히 요즘은 잘못된 것들에 용서가 없는 사회다. 공정하지 않은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렇다 보니 감동적이거나 착한 내용은 대중을 끌어당기지 못 한다. 다시 말해 갈등 등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면 이목을 끌기가 어렵게 됐다”고 그 이유를 짚었다.

이어 이 교수는 “극중 문제시되는 상황이 해결되리라는 반전에 품는 기대도 있다. 방송 중간 나오는 광고가 스트레스를 주지만 동시에 추후 나올 방송분의 기대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라면서 “그런데 이 기대를 저버리고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짜증과 답답함을 불러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방송가가 시청자의 반응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더 강한 분노를 조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인의 방송 출연이 당연해진 시대가 되면서 더욱 노골적인 장면들이 시청자의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괴롭힌다. 분노에 관한 이슈가 문제시되는 현재, 오히려 방송가는 오히려 요즘의 사회 문제와 반대로 나아가는 모양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전에는 예능에 일반인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다. 나오더라도 좋은 쪽으로 포장해서 나오는 경향이었다. 그런데 요즘 방송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욕을 먹을 수 있는 지점도 정제하지 않고 면면을 생생하게 내보낸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하 평론가는 “방송가에서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이 호기심과 화제성을 불러 일으키고, 이것이 곧 시청률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의심할 만한 상황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사례들을 이용해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다”고 현 방송가의 문제를 짚었다.

이어 “너무 부정적인 사례들만 내세우다 보면 시청자들이 정서적으로 황폐해지고 불쾌해질 수 있다. 또 욕을 먹는 당사자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면서 “이런 점들을 헤아려서 주의 깊게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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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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