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과의 전쟁 [김성영의 sound nomad]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 있는 500석 규모의드라이덴 극장(The Dryden Theatre)은현대 영화와 아카이브 영화 상영을 위해 아날로그 및디지털 사운드 트랙을 재생할 수 있는 최신 사운드 시스템과미국 청력 손실 협회 로체스터 지부에서 제공하는최첨단 청각 루프 시스템이 구비돼 있다.대중 사진과 영화 필름의 선구자인 조지 이스트먼을 기려1947년에 설립된 그의 박물관 내에 있다.[드라이덴 극장 자료]
난청과의 전쟁 [김성영의 sound nomad]

전 세계는 난청과의 전쟁을 겪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4억3000만명이 치료가 필요한 난청으로 고통받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난청 환자의 수가 증가하여 2050년이 되면 7억명, 전 세계인구의 10분의 1이 난청으로 고통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난청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 계기는2020년 Lancet에 개재된 논문 덕이었다. 리빙스턴과 다른 공저자들이 발표한 이 논문은 그동안 여러 이비인후과 및 뇌신경과학자들이 짐작해오던 가능성을 실제로 검증한 결과를 담았는데, 그것은 바로 난청과 치매의 연관성이었다. 이는 음악과 오디오, 그리고 소음 등 관련 분야의 모두에게 충격을 줬다. ‘20여년간 드럼연주를 해온 음악을 향한 나의 열정이 이제는 내 머리속의 지우개가 된다는 말인가?’

두가지 점에서 위의 연구결과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첫째,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에 자연적으로 노인성 난청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다양한 환경 소음의 증가로 일상에서 청각 신경 기능 저하에 영향을 주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출장으로 어느 지방 교회의 예배를 참석하게 된 날이다. 교회의 최첨단 사운드 시스템은 위풍당당한 외관만큼 100dB SPL을 넘어 110dB에 가까울 정도의 소리를 냈다. 이 정도의 음압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의 엔진소리를 귀에 직접 대고 듣는 것과 유사한 정도다. 미국 직업안전및보건국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OSHA) 기준에 따르면 이정도의 음압에 약 30분이상 노출될 때 영구적인 청력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날 교회에 있었던 모두가 잠재적 청력 손상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었다. 휴대하고 다니던 귀마개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새, 지하철, 클럽, 공사현장 등 수많은 곳에서 증가하는 환경 소음은 잠재적으로 귀를 혹사시키고 이는 결국 젊은 세대의 난청 환자수를 늘어나게 하고 있다.

존스홉킨스 의대에서도 난청과 치매의 연관성에 주목하는 연구를 2023년 미국의학학회지(JAMA)에 보고했다. 2000명이 넘는 방대한 환자들에게 실제로 청력 측정 및 인지 검사를 수행한 이 연구의 결과는, 청각 기능의 저하는 뇌의 자극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동의 위축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위축된 사회적 활동이 다시 뇌의 자극을 저하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함께 얘기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뇌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는데, 이 소통하는 과정을 난청이 방해한다는 것이다. ‘뭐라구요?’와 같이 되묻는 행위가 대화의 흐름을 끊는 등 소위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으로 여겨져 모임 참여와 같은 사회적 활동을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청력이 저하되더라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뇌를 자극하며 치매를 예방할 방법은 있다. 혹은 더 나아가 최첨단 의공학 기술을 통해 치매 자체를 극복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 작년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처방이 허용된 레켐비를 이어 최근에 FDA 승인을 받은 도나네맙 등 초기 치매용 약이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치매 혹은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수 보다 난청 환자의 수가 더 많기에 난청 개선을 통해 사회적 활동이라는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치매로의 발전을 막으려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023년 치매 치료제 관련 업계의 규모가 약 5억 달러정도 였음에 반해 같은 해 난청 치료관련 업계의 규모는 약 14억 달러 정도의 세 배 이상이었다. 그리고 시장 규모도 연 5%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난청과의 전쟁 [김성영의 sound nomad]
요한 네포무크 멜첼이 1813년에 제작한 베토벤의 보청기 [출처 : 이화여대 도서관 온라인 전시]

난청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고립을 가져오는지 악성(樂聖) 베토벤의 삶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유서로 알려진 ‘하일리겐슈타트 편지’ 중 “음악가로서 나만이 누릴 수 있었던 온전한 감각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겠어? 어떻게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해주세요! 소리 질러주세요! 나는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어?”과 같은 대목으로부터 난청에 대한 그의 갈등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편지에는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내용이 더러 적혀있지만 놀랍게도 베토벤은 편지를 작성한 이후 25 여년간의 음악 생활을 더 이어간다. 난청과의 투쟁을 결심한 그는 트럼펫 보청기로도 알려진 당시의 최첨단 음향 확성기 장비를 퇴화해가는 청각 기능을 대신해가며 작곡의 의지를 이어갔다.

존스홉킨스 의대의 연구결과도 난청 환자가 보청기를 활용해서 사회적 활동을 이어갈 경우 치매로의 발전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난청과의 전쟁에서 반격의 선봉장에 보청기가 있는 것이다. 보청기 기술은 지난 몇 년에 걸쳐 혁신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심지어 미국 정부는 3000만명이 넘는 난청 환자에게 보청기 보급을 늘리기 위해 2022년 처방전 없는 보청기 구매를 허용했다.

기술의 진보와 규제 완화의 시너지로 현재는 애플 그리고 삼성의 모바일용 이어폰만으로도 주변 음량을 증가시키는 일부 보청기 기능 시연이 가능하다. 범용적으로 쓰이는 모바일용 이어폰이 보청기의 기능을 포함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진입장벽을 낮추었다는 관점에서 난청과의 전쟁 중 전략적 고지를 선점했다고 볼 수 있다. 소위 청각 장애를 가진, 혹은 노인으로 비춰지는 외관상의 우려가 보청기 사용 저하를 유발한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청기 제품의 종류가 확대되어도 널리 사용되지 못한데는 보청기 자체의 기능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보청기는 내가 원하는 소리만을 선택적으로 골라서 증폭해주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장 바람직한데, 현재 적어도 필자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이런 선택적 증폭이 가능한 보청기는 상업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듣고 싶어하지 않는 배경음까지 같이 증폭되는 것이다. 배경음과 섞여 증폭된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 소음으로 느껴지게 되고 보청기는 쓸데없는 소리만 크게 해주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인간은 다양한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자신이 원하는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여 들을 수 있다. 보청기가 더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선택적으로 소리를 키워주는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기능을 추가하고자 연구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사람의 머리 혹은 각막의 방향이 주로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대상과 일치한다는 점을 고려해서 그 방향의 소리를 주로 확성하고 그 외의 소리들은 줄여 주기도 하고, 최신 AI 기술을 활용, 여러 음성들을 분리한 후 특정 음성과 뇌파의 반응 관찰을 통해 해당 음성 레벨을 선택적으로 증가시키는 기술을 적용하는 등 여러 연구가 진행중이다.

다만 필자는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여 더 나은 보청기를 만들고, 이로서 난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 발생했기에 막을 수 있는 효용성 차원에서 보청기의 보급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애초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것이 아닐까? 왜 우리의 사회는 더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차지하는 구조로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노인성 난청이 아닌 환경적 난청 환자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리로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공연 중 연주자의 소리로 관중을 압도하는 것은 음악의 미흡한 퀄리티를 보완하고자 생겨난 결과는 아닐까? 이 전쟁은 어쩌면 소리의 가치를 음량으로서만 치환하고 이를 복종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문화 자체의 변화 없이는 영영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