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한 두 달 소비자물가 지켜봐야”
“수출보다 부진하지만 내수도 2.1%수준”
“급등 농산물, 수입 통해 공급 유연성 확보해야”
“분기별 경제전망, '틀렸다'보다 '격차' 메시지 봐달라”
[헤럴드경제(워싱턴 D.C)=김용훈 기자] “주요국 통화정책보다 국제유가가 어떻게 될 지 더 문제인 것 같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18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가 진행 중인 워싱턴 D.C.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에 “근원물가 상승률에 비해서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잘 내려오지 않는다”며 “직접적으로 유가가 우리가 생각하는 (배럴당)90달러 아래에 있을지 더 크게 올라갈 지가 가장 큰 전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지난주 이란과 이스라엘간 긴장이 올라간 것은 예상 밖의 일이라서 결과가 어떻게 일어날 지 유심히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습 이후 배럴당 90달러선까지 넘었던 국제유가는 중동 지역 전쟁 우려가 누그러들면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언제라도 튈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72%에 이르는 등 중동사태 추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선 이란이 국제원유 주요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최대 13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유가 상승은 고스란히 수입 물가에 반영돼 국내 물가를 끌어올릴 수 밖에 없다. 당초 한국은행은 국제유가를 배럴당 83달러로 전제하고 2월 수정 경제전망을 작성했는데, 두바이유는 지난 12일 종가 기준 배럴당 90.48달러까지 치솟는 등 국제유가는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국제유가로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실패하면 금리 인하 시점은 뒤로 더 밀릴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또 지난 12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나온 “금리인하 깜박이를 켤지 말지 고민하는 상황”이란 발언에 대한 질문에는 “금통위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최소 한 두 달 더 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저를 제외한 다섯 분은 아직 금리인하를 시사하는 것이 성급하다고 보고 있고, 한 분은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직 깜박이를 킨 상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언제 그걸(금리인하) 결정할지는 지난번 말한 대로 한 두 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봐야 금통위 의견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해서도 그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평균 100달러 이상 될 경우 물가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어서, 중동 사태를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3월 3.1%를 기록했다. 앞서 한은이 내놓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3%다.
아울러 사과 등 급등한 농산물에 대해 수입 개방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한 소신발언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농산물 시장을 완전개방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공급조건은 그때그때 재정을 통해서 도와주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면서 "다만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 뻔히 알면서 둘 것이냐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갖고만 있을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수입 물량을 확보하고, 공급 유연성 확보를 위해 노력할 때가 됐다”며 “개방하면 전면개방아니냐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생필품 가격 상승에 따른 근원물가 상승 가능성에 대해 이 총재는 “지금 상황으로는 수출은 잘되고 있고 내수는 조금 어려운 상태”라고 언급했다. 다만 그는 “부진하다고 표현하니까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수출만큼 빠르진 않지만 내수도 2.1% 수준의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며 “한은 직원들이 신용카드 사용량, 은행대출 등을 통해 매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중장기적 물가흐름은 물가당국의 예상대로 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올 하반기부터 분기별 경제 전망을 발표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 이 총재는 “금통위원이 새로 오게 되면 ‘파일럿’ 개념으로 이걸 어떻게 할 지 1년 동안 내부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상하반기 동시에 각 분기별 전망을 보여줄 계획인데, 그렇게 할 경우 전망에 오류는 많아질테지만 국내외 전망이 바뀌면 그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은 전망이 또 틀렸다’가 아니라 한은보다 유가가 생각보다 더 올랐다’는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 총재는 중단된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가능성에 대해선 “효과가 없을 때 가져올 필요가 없다”며 “일본도 통화스와프가 있는데 (엔화는)우리보다 더 많이 절하됐다”고 말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필요성에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워싱턴 D.C의 IMF 본부 건물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통화 스와프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통화 스와프는 유동성이 부족한 경우에 대한 대응 장치라면서 “그런데 지금 외환 시장은 유동성 부족에 따른 게 아니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따른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