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원 재택령 확산
임원들 글로벌 현안 대응을 위한 불가피한 해외출장 이어져
[헤럴드경제=문영규·원호연·주소현 기자] “적어도 임원 중 1명은 매일 하늘에 떠 있습니다.”(한 대기업 임원)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만 재계 임원들은 오늘도 밖으로 나선다. 전 세계 각지 현장에서 현안을 챙겨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에 거리두기·재택근무가 강화되고 직원들의 출장 자제령이 내려졌지만 임원들의 해외 출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지 생산 점검, 글로벌 부품 수급, 수출계약, 주요 전시회 영업 등 도무지 재택으로만 소화할 수 없는 업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쪽에선 재택 근무를 이어갈 때 다른 쪽에선 동분서주하는 코로나 시대 기업들의 ‘두 얼굴’이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7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은 베트남 현지 사업장 점검을 위해 해외 출장을 떠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2’의 생산을 점검하기 위한 출장이라는 관측이다. 베트남은 코로나19로 현지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곳이기도 하다. 마이크로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품의 양산 확대를 위한 현지 공장 증설 이슈도 있다.
한 부회장은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2022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고 직후엔 유럽으로 날아가 바쁜 해외출장 일정을 소화했다.
삼성전자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임직원의 해외 출장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 등에도 참석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현안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해외출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해외 계열회사 수만 80개국 583개에 달한다. ‘임원 누구든 매일 1명은 하늘에 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는 러시아는 물론 침공 우려가 있는 우크라이나에도 사업장이 있다.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은 현지 방역당국의 코로나 봉쇄 조치로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사업혁신팀 신설 및 중국 내 가전·모바일 점유율 확대도 현안으로 남아 있어 경영진의 중국 현지 방문도 예상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장기화되고 있는 반도체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수 반도체 기업이 자리잡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상무급 임원을 파견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내린 자체적인 출장 제한 방침에도 강행된 미국행이다.
자동차 업계는 올해 하반기에는 반도체 부족 문제가 해결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최근 3분기 이후까지 공급 부족 사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반도체 부품 재고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실제 현대차그룹은 일부 전력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당 임원 역시 미국 반도체 업체와 부품 수급을 위한 담판을 짓기 위해 급히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주도권 싸움과 배터리 내재화 움직임으로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으며 출장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배터리 합작사 ‘얼티엄셀즈’를 출범시킨 LG에너지솔루션도 세 번째 합작 공장 투자 발표를 위해 김동명 부사장(자동차전지사업부장)이 현지를 방문했다.
포스코는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와 그린 수소 생산 협력을 위한 협력 관계를 맺기 위해 유병옥 산업가스수소사업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중동 순방길에 동참하기도 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글로벌 투자 및 현지 네트워킹에 직접 나서고 있다. 지난해만 세 번의 미국 출장을 다녀왔고 지난달 ‘글로벌 2021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도 참석했다. ‘CES2022’에는 최 회장의 차녀 민정 양을 비롯해 SK이노베이션, SKE&S,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현장에 총출동했다.
역대급 수주를 따낸 방산업계 역시 올해 문재인 대통령의 호주·이집트 순방에 동행했다. 손재일 한화디펜스 사장은 지난해부터 이집트에만 총 3번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주완 LG전자 사장도 지난해 12월 취임 직후 전장사업 점검을 위해 오스트리아 ZKW를 방문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정부의 방역지침이 강화되면서 기업들의 재택근무와 출장 자제령이 이어지고 있지만 경영상 중요한 해외 현지의 현안들을 원격으로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중요 계약 등은 직접 만나서 진행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에도 중요하고 긴급한 현안으로 인해 임원들의 해외 출장이 잦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