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가고시마공항 도착 승객 일부 짐 안내려
컨테이너 1개 박스 안 내린채 그대로 돌아가
승객 20여명 당황…에어부산 측에 항의 소동
항공사 측 “가고시마공항 측에서 실수한 것”
하루뒤 짐은 받아…1인당 5000엔 보상키로
해당 승객 “항공사측 진정한 사과 없어 씁쓸”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얘길 들으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헷갈린다는 독자들이 꽤 있을것 같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4시30분 부부 두쌍, 즉 4명의 50대 성인이 인천공항발 가고시마(鹿兒島)행 에어부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약 1시간반 후 이들은 가고시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빨리 찾고 서둘러 여행정취를 느끼고 싶은 맘으로 설렜을 겁니다. 그런데 한시간이 지나도 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짐을 찾아 하나둘 씩 빠져나가는데 이들의 짐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 답답해한 채 하릴없이 기다렸답니다. 초조한 맘으로 한시간여 동안 기다리다가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 무슨 일인가 알아봤답니다. 얼핏 들리는 얘기로는 이들의 짐을 내리지 않고 비행기가 그냥 돌아갔다는 겁니다. 모든 짐은 내렸는데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안내린채 그냥 갔답니다. 그 컨테이너 박스에 이들의 짐이 있었던 것이지요. 짐을 받지 못한 이는 이들 네명 뿐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들 4명 외에도 스무명 가량이 계속 짐 나오기만 기다렸다고 하니, 적어도 20여명 이상의 승객이 짐을 받지 못한 것이지요.
이들이 에어부산 측에 항의를 한것은 당연하겠지요. 항의가 일자 에어부산측 관계자가 내려왔답니다. 이 관계자는 죄송하다면서 “가고시마공항 측 실수로 컨테이너 하나를 내리지 않았으며 이는 공항측에 책임이 있다”고 사실 관계를 확인해주면서도 가고시마공항 측이 잘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답니다. 그러면서 서둘러 짐을 다시 받을 수 있는 조치를 하겠다고 했답니다. 타고 온 비행기가 승객만 내려주고 짐을 내려주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 황당했지만 어디 하소연할데도 없고, 달리 방법이 없어 두 부부는 일단 공항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사전에 예약한 호텔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짐에는 이들의 옷이며 여행 필수품이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짐 없이 그날 밤 겪었을 불편의 크기는 말안해도 짐작 됩니다.
이를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25일 아침 기자는 가고시마 한 식당에 있었습니다. 두 부부를 우연히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만난 것은 아니고 옆 테이블에 앉게 된 것이지요. 수근대는 이들 얘기가 귀에 들리다보니 여러가지 물어보게 됐습니다. 현장을 돌아다니는 취재기자는 아니지만, 기자라고 말하고 그 사연을 듣게 됐습니다. 두 부부는 기자의 질문에 상세히 그 장면을 얘기해줬습니다.
남성 한 분은 비행기 짐이 실무 착오로 분실됐다거나 다른 노선으로 잘못 실려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승객만 내려주고 짐을 그대로 들고 돌아갔다는 것은 처음 봤다며 당황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에어부산 측에서 다음날 에어부산 또는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보내준다고 했으니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이며, 그 아시아나항공을 얼마전 현대산업개발이 인수했죠. 두 부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더군요. 부인 한 분은 현지에서 입을 옷과 여행 필수품이 없어서 매우 불편함을 겪었고,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 부부들은 굉장히 선한 분들로 보였습니다. 항공사나 공항 측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나 책임 얘기는 자제하고, 그냥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만 하더군요. 매우 난처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죠.
점심때 같은 식당에서 두 부부를 또 만났습니다. 짐이 왔는지 물었더니 짐은 커녕 항공사로부터 연락도 없었다고 합니다. 부인 한 명은 “급한대로 얇은 겉옷 하나를 샀어요”라고 하더군요. 가고시마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하다보니 겉옷이 필요했나 봅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제때 받았다면 현지에서 겉옷을 살 이유가 없었겠지요. 두 부부의 표정은 아침보다는 좋지 않았습니다.
저녁때 식당에서 이들을 또 만났습니다. 짐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하루만에 짐을 받은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됐습니다. 사실 에어부산 측에서도 서둘러 짐을 보내줬을 겁니다. 그렇지만 서울~제주 노선 같이 수시로 비행기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하루가 걸린 것이겠지요. 항공사 측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봅니다. 이를 두 부부도 인정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보상 문제가 궁금했습니다. 남성 한분에게 물어봤더니 “개인당 5000엔(한화 약 5만원) 준다고 하던데요?”라고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항공사나 공항 측으로부터 진심어린 사과 전화는 없었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에게는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연락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짐을 받으셔서…”라고 하자, 그냥 웃기만 하더군요.
이 사연을 글로 전하는 것은 에어부산이나 가고시마공항 측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디지털시대, 인공지능(AI) 시대, 사물인터넷 시대라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가 있을 수 있지요. 에어부산측이 됐든, 가고시마공항 측이 됐든 어디 책임인지를 떠나 사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비행기 짐이 다른 비행기에 잘못 실리기도 하고, 아예 수하물 싣기가 누락되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가 타고간 비행기가 자신은 내려준채 짐은 안내려주고 그대로 다른 공항을 향하거나, 그대로 귀항하는 것은 좀처럼 발생하지는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요.
항공사 측으로선 공항 측에 잘못이 있고, 그렇더라도 해도 서둘러 짐을 보냈기에 귀책사유가 없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의 책임이 항공사에 있는지, 공항 측에 있는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에어부산이나 가고시마공항 측엔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책임 소재보다는 두 부부가 겪었을 불편과 당혹감, 그리고 하루동안이지만 수없이 교차했을 복잡한 심경입니다. 이들 부부가 원한 것은 어차피 실수는 벌어진 일이기에, 그 이후의 항공사나 공항측의 진정성 있는 대응이 아니었을까요? 보상금 5000엔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면서 진심 어린 사과는 받지 못했다는 남성 한분의 씁쓸한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이들 부부와는 저녁 식당에서 만난후 더 보지 않았으므로, 그 이후 항공사 측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후속 글을 써서 승객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는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께서 이런 일을 겪었다면 마음이 어땠을까요? 일부는 ‘세상에 이런일이?’라며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비행기 짐을 실을때 일일이 무게를 재며 일부 추가 요금을 받기도 하는 등의 세밀한(?) 신경을 쓰는 항공사로선 누락 없이 모든 승객이 짐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 두 부부께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잊으시라”고 말씀 드리려 했는데, 그 다음날은 식당에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을 이 글로 대신합니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