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밴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갑자기 바빠졌다. 연준의 역할과 기준금리 결정 매커니즘을 공개한 것은 물론 정부와 국회에 대한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전임자로서 현임자의 금리정책에 대해 직접 평가를 내린 것이다.
그는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1.5% 수준인데, 이는 목표치인 2% 이하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경제전문매체 CNBC 방송에 출연해서는 “미국 경제가 1% 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Fed가 금리 인상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고액의 강연료로 빈축을 샀던 버냉키다. 이 때문에 얼핏 이날 출간한 자서전 ‘행동할 용기: 위기와 그 이후에 관한 회고록’의 홍보활동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하지만 버냉키의 이 같은 행동은 임기중 이뤄낸 양적완화의 효과를 지켜내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버냉키와 재닛 얠런 현 의장은 각각 의장과 부의장으로 함께 대규모 양적완화(QE) 정책을 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재임 중에도 ‘비둘기파’로 평가됐다. 자리를 물려받은 후임 옐런 의장 역시 비둘기파다.
당시 버냉키 전 의장은 ‘헬리콥터 벤’이라 불릴 정도로 ‘달러살포’에 앞장섰다. 양적완화 종료 목표인 실업률 6.5%, 물가상승률 2%로 버냉키-얠런 콤비의 작품이다. 최근 실업률은 5.1%까지 떨어져 목표를 달성했지만, 물가상승률은 ‘아직’이다.
그는 CNBC에서 그는 “금리를 빨리 올렸더라면 미국 경제를 죽였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겪어본 사람이 안다’는 말처럼 전세계인의 관심이 Fed로 쏠리면서 더욱 무거워진 얠런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그는 WSJ에 “통화정책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물가상승 없이 완전고용을 이뤄 중앙은행은 소임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미국 경제의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준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른 정책 결정권자들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얠런 의장은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계속 언급해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경제지표들이 악화되면서 금리인상보다는 동결 기대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전임자의 훈수와 격려를 얠런 의장이 어떻게 해석하고, 결정을 내릴 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