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수많은 사건ㆍ사고들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사회와 주변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잊혀지면 시간이 지나는 것만으로 이들의 분노와 고통도 사라질까?

울산ㆍ칠곡 사건의 피해아동 가족들은 아직도 우울증과 화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나영이와 그 가족들도 7년 전의 끔찍한 악몽으로 인한 고통과 꿋꿋이 맞서고 있다.

[로펌&이슈] 사건·사고 피해자 정신건강 회복 지원이 첫걸음

며칠 전 만난 세월호 참사 피해학생의 아버지는 밤마다 눈물에 젖은 베개에서 잠이 든다고 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프다 숨이 멈추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된다는 어머니도 있었다. 어떤 이는 운전 중 눈물로 앞이 보이질 않아 갓길에 차를 세워 놓고 한참 울곤 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초기 넘쳐나던 정신과 의사들이나 상담사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피해가족들만 숨죽여 울고 있는 것일까. 9ㆍ11 테러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국가 차원에서 15년 간 지원해온 미국, 70년 전 일본군 위안군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조사를 하겠다는 여성가족부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분노와 한(恨), 아픔이 많은 사회는 위험한 사회다.

분노나 화를 억누르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를 앓는 사람이 늘어 흉악범죄가 증가했다는 분석이나 지난해 검거된 폭력범 10명 중 4명이 홧김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조사결과는 우리 사회가 분노조절에 얼마나 취약한 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건ㆍ사고의 가해자나 책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건강하게 회복되는 것이야말로 안전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일 법무부가 범죄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게 된 피해자 지원을 포함한 범죄피해자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지원대상이나 기간, 지원금 액수, 치료 지원기관 범위 등 구체적 내용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피해자를 위한 장기적 안목의 지원시스템을 만들고 트라우마 치료 및 상담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고립된 채 분노와 좌절감을 키워가는 피해자들을 10년, 20년, 아니 70년이 걸릴 지라도 범죄 피해 이전의 심리상태로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이것이야말로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

<법무법인 나우리 이명숙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