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해보는 장사’만큼 무모한 게 있을까. 미술관 얘기다.

또 하나의 사립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아트센터’라는 이름으로 미술, 퍼포먼스, 영화, 사운드아트 공연 등을 아우를 예정이지만, 큰 축은 현대미술이 될 전망이다. 개관전으로도 두 현대미술가 전시가 마련됐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관장 박만우)’다.

‘플랫폼-엘’은 핸드백 브랜드 ‘루이까또즈’로 유명한 태진인터내셔날(회장 전용준)이 서울 학동역 인근에 세운 복합예술공간이다. 3년 연속 매출 하락세에 지난해 영업이익이 ‘반토막(전자공시 기준 2014년 308억원, 2015년 143억원)’이 날 정도로 실적이 악화됐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오너의 집념은 한번 빼든 ‘칼’을 도로 넣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미술관은 ‘돈’이 될까

미술관 건립은 기업 메세나의 정점에 있다. 특히 오너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거나 미술품에 조예가 깊은 컬렉터일 경우에 더욱 그렇다. 이들은 문화재단을 만들어 후원을 하거나, 자신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미술관을 열기도 한다.

미술관을 만드는 건 비단 기업 오너 뿐 만이 아니다. 작가도 만들고, 컬렉터도 만들고, 일반인도 만든다. 1976년 토탈갤러리로 시작, 국내 등록 사립미술관 1호인 토탈미술관을 세운 문신규 토탈디자인 회장도 건축가 출신이다. 물론 공무원도 정부 정책 일환으로 국ㆍ공립 미술관을 만들고 운영한다.

그런데 미술관은 ‘돈’이 될까.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일까.

한국미술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의 대답은 단언컨데 “아니오”다. 이 관장에 따르면 적자를 보거나, 혹은 적자를 많이 보거나다. 물론 정식으로 미술관 등록을 하고, 미술관법에 의해 작품 매매를 하지 않는 미술관, 순수 미술전시로 운영되는 미술관의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미술관을 만들까.

미술관을 향한 열망, 혹은 낭만=국내 기업 오너들이 만들거나 오너의 가족이 건립, 운영하는 대표적인 미술관은 삼성그룹의 삼성미술관 리움, 플라토, 호암미술관이 있고, 대림그룹의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 금호그룹의 금호미술관, 한솔그룹의 뮤지엄산, 유니온약품그룹의 서울미술관 등이 있다. 현재 그룹해체 된 대우그룹과 쌍용그룹도 각각 아트선재센터와 성곡미술관을 남겼다.

미술 컬렉터 출신으로는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이 만든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가 있다. 터미널, 백화점 등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시킨 김 회장은 서울, 천안, 제주 등에 갤러리와 뮤지엄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김 회장은 미술품 컬렉터를 넘어 스스로 ‘씨킴’이라는 이름으로 작가 활동도 하고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도 국내 대표적인 고미술 컬렉터였다. 전용준 태진 회장 역시 그동안 미술 전시, 클래식 공연 등을 꾸준히 후원해왔다.

기업 미술관 대부분은 재단 출연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등록을 한 정식 미술관의 경우 작품 판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운영비는 재단 지원금과 전시 입장료 수입, 프로그램 운영 수입, 그리고 문화상품 판매나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 수입으로 채워진다. 재단 지원금은 미술관 설립 초기 동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출연자금의 운영ㆍ이자 수익에서 나온다.

그러나 기업이 낸 미술관이라고 해서 기업 경영 노하우가 미술관 운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기업 미술관의 경우 그나마 재단 출연금이 있어 어느 정도 ‘인공 호흡’은 가능하지만 미술관 자체 수익으로는 연명이 어려운 정도다.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 적자 ‘늪’…지속가능한 수익모델 없어=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립미술관이자 짱짱한 컬렉션을 갖춘 삼성미술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리움의 경우 학예사만 10명. 전시를 할 때마다 공간 구성을 새롭게 하는데다, 신진 작가 후원도 하고 있다. 삼성미술관의 자체 수익원은 입장료 수입과 관계사 기부금, 문화상품 판매 등이다.

삼성미술관 관계자는 “미술관을 해서 돈이 남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이나 법인, 혹은 지자체가 미술관을 만들 때도 건물을 잘 만드는 것보다 지속가능 여부가 중요한데, 그게 쉽지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미술계 일부에서는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이 부영그룹에 매각되면서 ‘플라토’의 문을 닫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대중친화적인 전시와 탄탄한 마케팅을 기반으로 관객동원 성공 사례로 꼽히는 대림미술관 역시 내부적으로는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림은 소외계층 무료 티켓, 주민 친화 프로그램 등도 운영하고 있다.

개인이 세운 사립미술관의 경우는 더 열악하다. 개인전이나 기획전의 경우 전시 입장료는 5000원~1만원 선. 해외 명화를 들여오는 소위 ‘블럭버스터’ 전시는 1만5000원까지도 받고 있지만, 미술관 관계자들은 “입장료 수입으로는 미술관 전기세도 못 낸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옥 관장은 “1년에 까먹는 돈만 3억원”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장은 “전시를 한 번 할 때마다 최소 5000~6000만원에 인건비, 관리비 등이 들어가는데, 사비나미술관의 경우 운영비의 3분의 1 정도를 공적 자금 루트를 뚫었지만, 나머지는 관장 개인의 역량으로 채워야 한다”며 “질 좋은 전시를 욕심낼수록 적자 폭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40년 역사의 토탈미술관은 그동안 약 80억원 정도 누적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장흥과 서울 평창동, 동숭동 일대 부동산 매각으로 자금을 메워오다 지금은 평창동 미술관 부지만 남은 상태다.

▶‘돈’ 안되는 미술관, 왜 만들까=2015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 집계 기준 국내 미술관 갯수는 총 202개다. 국립 1개, 공립 51개, 사립 139개, 대학미술관이 11개다. 2015년 1월 이후 신규 등록한 미술관(한국미술관협회 가입 기준)은 5개다. 등록 안 된 미술관까지 합치면 수치는 더 늘어난다.

물론 특화에 성공해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지방 사립미술관들도 있다. 충남 당진에 위치한 아미미술관(관장 박기호)은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시골 폐교를 미술관으로 바꾼 일종의 ‘에코뮤지엄’인데,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작가 출신 박기호 관장이 일일이 손때를 묻힌 미술관이 수려한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주말에만 300~400명 정도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명소가 됐다.

경북 영천에 위치한 시안미술관(관장 변숙희) 역시 폐교를 기반으로 한 에코뮤지엄으로, 다양한 주민 친화 프로그램으로 입소문이 났다. 전시실과 레스토랑, 조각공원에 캠핑장도 운영하며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극소수의 성공 사례를 제외하면 ‘돈’이 안되는 미술관. 왜 만들까.

기본적으로는 미술이 좋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열망, 혹은 낭만이 이들을 미술관으로 이끈다. 컬렉터들의 경우, 수집품이 늘어나면 수장고에 쌓아놓기보다 미술관을 통해 공유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기업의 경우에는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수준 높은 문화마케팅 플랫폼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미술관 경영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관장은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낭만적인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경영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비영리 공공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문화적 사회공헌 사업이라도 비영리 공공성에 영속성이 중요하다”며 “어떤 성격의 미술을 담을지에 대해서도 분명한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