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세계에 알린 두 가지가 있다. 킬링필드와 앙코르와트다. 공교롭게도 두 가지 모두 캄보디아의 슬픈 역사를 상징한다.

앙코르와트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크메르제국 자야바르만 2세(802년~850년) 때다. 그는 앙코르 톰 남문 왼편에 있는 프놈 쿨렌(Phnom Kulen) 언덕에 왕조를 건설하고, 나라 이름을 캄부자(Kambuja)로 정한다. 훗날 캄부자는 캄푸치아(Kampuchea)가 되고 캄보디아로 이어진다.

앙코르와트의 정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힌두교 교리에 의한 것으로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사원임을 짐작케 한다. 강력한 왕권의 상징물인 셈이다.

[세계의 왕실-<16> 캄보디아]왕권의 상징 앙코르와트...힘 약할때마다 ‘수난’...슬픈 역사의 상징으로

앙코르와트가 완공된 것은 캄보디아 역사의 황금기였던 12세기 초 크메르제국의 수르야바르만 2세 때다. 앙코르와트는 도성으로서 창건됐고, 축조된 이래 모든 종교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1431년 태국의 시암족인 아유타야 왕조가 앙코르를 함락시킨 이후부터는 지금처럼 앙코르(Angkor)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제국의 수도 기능을 상실하고 소승 불교 사원으로 용도가 변경된다. 16세기 이후에는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나마 깊고 넓은 해자가 정글의 침입을 막아줘서 파괴는 최소화됐다.

앙코르(Angkor)는 고대 산스크리트어에서 ‘도시’이라는 의미다. ‘와트(Wat)’는 크메르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다.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시’가 된다.

공교롭게도 앙코르와트가 쇠퇴하면서 캄보디아의 역사도 쇠퇴한다. 크메르제국이 앙코르와트를 빼앗긴 후 인도차이나 반도의 패권은 시암(태국)과 버마(미얀마) 등으로 넘어가고 19세기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프랑스는 1907년~1970년까지의 숲을 제거하고, 제단을 수리하고, 배수로를 설치하여 앙코르와트의 붕괴를 막았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크메르루주와 베트남과의 전쟁 기간 동안 심각하게 훼손된다. 1982년 집계 기준으로 앙코르와트의 중요 유물 30점 이상이 없어졌고, 전체 유적의 70%가 복원불능의 상태로 파괴됐으며, 사원 근처 왕궁의 유물 약 1000점이 도난·파괴됐다. 캄보디아가 슬픈 역사를 맞이할 때마다 앙코르와트도 수난을 겪은 셈이다.

1993년 이후 복원과 수리작업이 재개됐고, 프랑스와 일본, 유네스코가 국제위원회를 만들어 보존에 힘쓰고 있다.

문영규 기자/